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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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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한윤수의 '오랑캐꽃'] <5>

틴은 베트남에서 상당히 잘 사는 부농(富農)의 8남매 중 막내딸이다. 대지가 200여평이나 되고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꿈같은 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뿐 아니라 나이 많은 부모가 애지중지 키워서 공주 같은 짓을 많이 한다.

언젠가 승용차에 틴을 포함하여 베트남 사람 다섯을 태우고 수원에 간 적이 있다. 정원초과라 부득이하게 뒷좌석에 4명이 타야 하건만, 덩치 큰 청춘남녀 4명을 모조리 뒷좌석에 몰아넣고, 틴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운전석 옆에 호젓이 앉아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목사님 옆 자리는 내 자리야!"
라는 듯이.

요렇게 아무 스스럼없이 공주같은 짓을 잘 하지만 틴에겐 그런 결점을 덮는 장끼가 있다. 생긋 웃는 미소다. 한국 사람은 참외를 깎을 때 과도를 밖에서 안으로 돌려 깎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듯 깎는데 그 모습이 의외로 이쁘다. 틴이 참외를 그렇게 이쁘게 깎아서 접시에 담아 갖다주며 생긋 웃으면 어떤 냉혈한의 마음도 녹는다.

▲ ⓒ프레시안

틴은 한국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실제로 일한 기간은 얼마 안된다. 수시로 회사를 옮겼기 때문이다. 다른 노동자 같으면 그렇게 자주 옮기다간 *삼진 아웃에 걸려 벌써 불법체류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맘씨 좋은 사장님들이 눈을 감아주고 입을 다물어주어서 불법체류자가 되진 않았다. 이렇게 직장을 자주 옮기다보니 잘 데가 문제가 된다. 공주들은 대개 그렇지만 친구가 별로 없다. 친구가 없으니 이 넓은 화성 땅에는 잘 데가 없어서 수원에서 다섯 정거장이나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금정에까지 가서 잔다.

공주는 친구가 없으므로 베트남에서 같이 온 애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 하루는 공주가 고용지원센터에서 발행한 알선장도 없이 자기 멋대로 김치공장에 취직했다. 그 김치공장이 애인의 회사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들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김치공장 힘든데. 금방 나오겠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아침 9시쯤 다급한 전화가 왔다.

"목사님, 그만두고 싶은데 사장님이 여권을 안 줘요."
나는 사장님을 바꿔달래서 여권을 돌려주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얼떨떨해 했다.

"오늘 고용지원센터에 우리 직원으로 신고할 참이었는데..."
"사장님, 그러면 *지정 알선 금지에 걸립니다."
사장님은 여권을 내주었다.

틴은 지금 전자용접 회사에서 일한다. 특근이 많아서 일요일도 쉬지 못한다. 하지만 거길 그만둘 수 없다. 이번에 그만두면 불법체류자가 되니까. 이제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삼진아웃 : 외국인노동자는 3년 체류기간 동안 1년에 한 번 꼴로 도합 세 번만 직장을 옮길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불법체류자가 되고 추방된다.
*지정 알선 금지 : 사업주 또는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지원센터에서 알선한 상대하고만 계약해야지, 임의로 선택한 상대와는 계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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