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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기다린 대선, 끝나곤 TV뉴스도 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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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구보다 기다린 대선, 끝나곤 TV뉴스도 안 봐요"

[현장] 쌍용차 해고자 "국정조사, 먼저 간 23명 명예회복 위한 길"

일곱살 은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다. "문재인 할아버지가 진 거야?" 엄마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졌대"

은서 아빠는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2646명 중 한 사람이다. 은서네 엄마와 아빠, '쌍용차 식구'들은 모두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 후보의 승리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저희가 하도 선거 얘기를 많이 하니까 은서도 매일 물어봐요. '문재인 할아버지' 졌느냐고요."

'쌍용차 식구'들은 대선 결과를 보고 "멘붕이 왔다"고 했다. TV 뉴스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해고 노동자의 아내는 "기대가 커서 낙담이 더 깊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은서가 좋아하는 '수미 이모'는 계속 "죄송해요. 이겨서 왔어야 했는데 …"라고 했다. 7일 저녁,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쉼터 '와락'에 들른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 노동대책위 출범 "노동권 유린되는 현장으로 가겠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민주통합당의 대선 승리를 그 누구보다 바랐던 이유는 하나, '국정조사'다. 정권이 바뀌고 국정조사를 통해 쌍용차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면, 세상을 등진 23명의 해고 노동자와 남은 가족들이 적어도 명예회복은 할 수 있으리란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민주통합당의 패배로 무너졌다. 대선 이후 한진중, 현대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도 쌍용차 노동자들은 마음을 다잡았다. 대선 전 새누리당 내에서도 황우여 대표, 박근혜 캠프 김무성 전 총괄선대본부장 등이 국정조사를 공언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남은 마지막 한 줄기 빛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멘붕'이 찾아왔다. 지난 4일 평택 쌍용차 공장 인근 송전탑 밑 농성장을 찾은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 때문이다. 이날 이 원내대표는 농성하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위험한데 송전탑에 왜 올라가 있느냐", "국정조사가 여러분을 위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최종 목표는 복직 아니냐"고 물었다. 또 7일에는 방송에 출연해 "기업 경영 의욕을 떨어뜨리고 해고된 전 직원들의 복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다시금 국정조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원내대표가 다녀간 지 사흘 만, 이번엔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꼬이고 꼬인 쌍용차 문제의 실타래를 풀겠다'며 대거 농성장을 찾았다.

▲ 민주통합당 노동대책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갖기 전 농성장을 방문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은 이날 먼저 당 소속의원 23명으로 구성된 노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장은 홍영표 의원이, 간사는 은수미 의원이 맡았다. 두 의원을 비롯, 우원식, 인재근, 전순옥, 진선미, 유은혜, 김성주, 신경민, 김광진 의원 등 대책위 소속 의원들은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방문한 뒤 기자회견에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비롯해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와 한진중공업 등 시급한 노동 현안 해결을 목표로 발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쌍용차뿐만 아니라 현대차와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GM코리아, 골든브릿지증권, 한국3M 등 노동권이 유린되고 짓밟히고 있는 노동현장으로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활동 계획을 밝혔다.

해고 노동자 "국정조사, 쉽지 않겠지만… 믿을 데가 또 있나요"

이어 평택 농성장을 찾은 대책위 소속 의원들은 '국정조사 실시' 의지를 거듭 밝혔다.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대선이 민주당만의 일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염원이 모여 있었는데 희망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1월 임시 국회가 열릴 텐데 민주통합당의 첫째 과제가 쌍용차 국정조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 혼신의 힘을 다해 관철하고 회계문제, 정리해고 문제 꼭 밝히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들은 사흘 전 이 원내대표 '국정조사 반대' 발언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낙담한 분위기였다. 민주노총 쌍용차지부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은 "지금 상황에서 국정조사를 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걸 안다"며 "여러분들이 결연한 자세로 돌파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다"며 국정조사 성사를 부탁했다.

그는 또 이한구 원내대표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전하며 "시각 차가 큰 것 같다. 국정조사를 요구하면 일자리를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다. 당시 문제가 다 드러나야만 경영정상화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한구 원내대표는 반대를 위한 명분쌓기를 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 7일 오후 경기도 평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철탑 농성장을 찾은 민주통합당 우원식(오른쪽에서 3번째) 원내수석부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양형근 조직 실장도 "돌아가신 23명에 대한 명예회복이 되어야 하고, 진실이 가려져야 한다"며 "이미 법적인 부분은 진행되고 있지만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빠른 해결을 위해선 정치권에서 나서주시는 길밖에 없다"며 호소했다.

대책위 홍영표 위원장은 "저희 목표도 국정조사를 통해 제도적으로 잘못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국정조사 실시를 약속했다.

대책위 의원들은 이어 철탑 위 농성자들과도 마이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 수석부대표는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 국정조사 하려고 잔뜩 마음을 먹고 있지만 새누리당이 협조를 잘 해주지 않는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 전 지부장은 무선마이크를 통해 "더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민주당이 앞장서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진선미 의원은 "저희한테 부탁하실 거 없느냐"며 "의료진 검진 거부하지 마시고 꼭 응해달라"고 부탁했다. 바람 소리에 묻혀 고공농성자들의 대답은 더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한 전 지부장과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육성 대답 대신 양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고공대화'를 마친 민주통합당 대책위 의원들은 "우리도 저 위로 올라갈 순 없는 거냐"고 물었다. 철탑 위 농성자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새누리당 이 원내대표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마지막 방문지인 '와락'으로 떠나기 전, 양 실장에게 "이한구 원내대표가 왔을 때보다 오늘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양 실장은 한 번 빙긋 웃고는 말했다. "그럼 어쩌겠어요. 국정조사 해주겠다고 나서는데. 지금 저희가 기댈 데가 이 사람들밖에 더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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