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는 지난 1970년대 말 군부 집권 시절 군과 경찰 등 공권력이 시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테러행위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리고 2001년 말 실각한 델라루아 정권도 시위대 진압에 폭력을 휘두르다 결국은 도망치듯 대통령궁을 빠져나간 전례가 있다.
농민대표들과 100여 일이 넘도록 팽팽한 대결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 정부는 시위대가 도로를 차단하거나 대통령궁 앞 광장을 점유하고 냄비를 두드려도 공권력 투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공권력 투입이 낳을 부작용을 염려해서다.
아르헨 정부는 서민들이 먹거리라는 자신들의 기본권을 지키려는 저항과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과격시위를 민주주의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따라서 공권력을 투입해 이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행위야말로 불법이며 반민주주의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단 한가지의 분명한 이유 때문이다.
국민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민들에 대한 먹거리 공급 중단을 볼모로 정부의 정책과 공권력을 무력화시킨 아르헨티나 농민단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기자는 부에노스아이 레스와 라빰빠 농축산협회 연합회(CARBAP)의 집행부 임원들을 카페 까르또니로 초대해 이들의 주장을 들어봤다.
다음은 CARBAP의 뻬드로 아빠올라사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농민단체들의 장기적인 도로 차단 시위로 인해 기본 식료품 품귀현상과 가격인상 등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 가운데 국내소비는 10%정도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내시장 공급은 정부의 시책에 발맞추어 급격한 가격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국내식료품 가격인상이 생산자인 농민들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의 식료품 파동은 다분히 유통회사들과 판매회사들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덮어씌울게 아니라 유통구조와 판매회사들의 마진폭을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 곡물 수출세 문제가 결국 국회로 넘어갔다. 어떤 전망을 하고 있나.
"입법부 의원들 대다수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지방출신 의원들이 농민들 편인데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
- 만일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도로차단시위를 계속할 것인가.
"국회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해 다시는 도로차단 등 극한 투쟁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난 100여 일간의 투쟁으로 우리의 의지를 충분하게 현 정부에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회와의 협상이 실패해 다시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도로차단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 이번 파동으로 정부와 농민대표들은 국제곡물시장의 가격 상승 때문에 손해 볼 게 없지만 서민들은 선의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리가 곡물의 공급 중단과 도로차단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게 된 건 순전히 현 정부의 책임이다. 생각해보라. 곡물 값은 역사상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부가 전체가격의 절반가까이를 수출세 명목으로 떼어내 버리면 우리 농민들은 인건비와 농기구 구입비, 비료대금, 유류비용 등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된다. 정부의 요구대로 다 떼어내 주고 나면 결국 우리 모두는 정부의 소작농에 불과 하다는 얘기다. 우리 역시 피해자들 중 하나다."
- 현 정부와 대립하게 된 건 정치적인 노선 차이 때문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키르츠네르 정부는 농축산 정책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좌파적인)통치 개념을 가지고 농축산업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사회주의적인 마인드로 아르헨티나 농축산업 정책을 이끌어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규모는 식량을 겨우 자급자족하는 수준인 그런 나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 노총과 노동자연합지도자들이 당신들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현 정부 지지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과 대화할 용의는 있는가.
"아르헨티나는 민주주의 사회이고 모두의 나라다. 우리는 누구와도 열린 대화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존중한다. 자리가 마련된다면 이들 대표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현 정국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풀어나갈 방도를 함께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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