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초는 이명박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기로 예정된 때다. 정부는 지난달 약 50~60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대통령이 중국에서 돌아오면 청와대가 주축이 되어 마스터플랜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민영화 프로젝트는 이명박정부가 마음속에서 갈고닦아오던 야심작이다. '747성장', 대운하, 한미FTA 등은 찬반 논란이 커 정치적 반발을 감수해야 하지만, 민영화만큼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공공부문에 불만이 큰 나라, 어찌되었든 시장경쟁이 개입하면 효율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되는 나라에서, 민영화는 보수 정치세력이 간직해온 카드이다. 이명박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취임 100일이 되는 6월에 배치한 것도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정권 초기에 공공부문 개혁자로서 국민의 신심을 사고, 정부에는 감세를 보충하는 재정기반을, 기업들에는 새로운 독과점 투자처를 발굴해주는 종합처방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들이 전면파업이라도 벌이면 이를 빌미로 노동개혁까지 밀어붙이고, 경제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엔 그 책임을 물을 피의자로 노동조합을 지목할 수도 있다.
이명박정부는 이 카드를 성사시키기 위하여 공기업 임원을 흔들어 야전사령관을 갈아치우고, 강도 높은 감사원 감사로 전운을 조성해놓았다. 그런데 이 기획이 그리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쇠고기 정국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의 국정운영 능력이 의심받고 있고, 국민들이 공기업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이명박정부에 대해선 훨씬 더 못마땅해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더라도 돌팔이 의사에게 수술을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국민들에게 생기는 것 같다.
순탄치 않을 공기업 민영화
더 중요한 이유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공공부문에 대한 수혜적 체험이 부재한 탓에 공기업 하면 떠올리는 게 '철밥통, 비효율'뿐이었다. 그래서 공기업 운영에 대한 불신을 근거로 공공부문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근래 들어, 공기업의 운영은 바뀌어야겠지만 그 대안이 반드시 시장기업에 맡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싹트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의 폐해가 커지면서 국민들에게 '공공성'에 대한 바람이 조금씩 생기고 있고, 미약하나마 의료, 보육, 교통, 에너지 등 공적 서비스에 대한 체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 공기업 민영화가 대대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공기업 운영과 서비스의 질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대처 총리는 고장난 채 방치된 공중전화 부스를 매일 접하는 시민들의 분노를 포착하고 영국통신(BT)을 첫 목표물로 삼았다. 반면 국민의료서비스(NHS), 영국공영방송(BBC)은 건드리지 못했고, 철도는 커다란 홍역을 치른 후 일부가 다시 공영화되었다. 영국 국민들이 공적인 의료, 방송, 철도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적 서비스, 나쁜 편은 아니다
이명박정부는 민간의료보험을 확대하고 영리법인화를 추진하면서도 다른 자리에서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왜? 국민들이 건강보험의 중요성을 조금씩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가 한미FTA 체결과정에서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의료개방 조항을 단념한 것도 그만큼 공적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이 큰 탓이다.
며칠 전 물 민영화방안이 알려졌다. 수돗물 질에 대한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익숙한 주민에게 물 민영화는 내키지 않는 일이다. 상수도 관리가 민간업체에 넘어가면 시장이윤을 보장해주어야 하기에 요금이 인상되거나 동결되더라도 차액만큼 지자체가 세금으로 보전해주어야 하니 말이다.
전기, 가스, 철도도 그러하다. 공기업이라 하면 왠지 불만이 생기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전기, 가스, 철도는 요금에서나 서비스 질에서나 나쁘지 않은 편이다. 김대중정부가 이 산업들을 그토록 민영화하고 싶어했지만 중단한 이유도 그것들만큼은 공적으로 관리되는 게 좋겠다는 여론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외국의 민영화 사례에서 요금이 오르고 공급이 끊기는 부작용이 확인된 것도 힘이 됐다.
공기업 개혁과 민영화 구별해야
조만간 이명박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발표할 것이다. 100일 실정을 반전시킬 작품으로 미련을 가지고 있을 게다. 우선 공공부문의 도덕성을 문제시해야 하기에 공무원연금 개혁, 공기업 비리 등을 함께 부각시켜며 '공기업 대 국민'의 대결전선을 형성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명박정부의 민영화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들의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공기업 운영의 '개혁'과 '민영화'를 구별해야 한다. 민영화가 '관료의 손'에 방치된 공공부문을 '국민의 손'에 넘기는 개혁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공공적 가치를 담아야 할 산업이 사기업 이윤논리에 종속되는 '사유화'가 본질이다. 진정 공기업 내부운영을 개혁하고 싶다면 공공 서비스의 주인인 시민들이 참여하고 감사하는 공공운영이사회를 제기해나가는 게 맞다.
공기업 노동자의 혁신도 중요하다. 자신이 생산하는 생산물의 공공적 가치와 서민의 생활을 연계해 사고하고 그 공공적 고리를 시민들과 공유해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왜 공기업인 토지공사, 주택공사에 서민들의 원성이 그리도 큰지, 과연 (중소)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자영 사업자를 주인으로 섬겼는지 되물어야 한다. 이제 노동자 스스로 개별 공기업별로 '공공성 방치 백서'라도 만들어 자기혁신의 증거로 삼아야 한다.
진짜 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라
이명박정부 100일 동안 우리 국민들이 달라지고 있다. 747 점보기를 보면서도 '성장론' 환상에 젖지 않고, 경부대운하가 전해줄 개발이익에 연연하지 않으며, 아무리 값싼 쇠고기라도 먹을거리 안전과 검역주권을 양보하지 않는 우리 국민이다. 오랜 권위주의, 시장주의 터널에서 자랐지만 새로이 사회공공적 가치를 세워가고 있다. 곧 점화될 공기업 민영화 논란이 한국에서 공기업이 진짜 공적 기업으로 되살아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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