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포의 딸이 여러 번 전화를 해왔다.
"우리 아버지 퇴직금 좀 받아주세요."
"알았어요. 아버지를 보내세요."
차일피일 미루다 온 아버지는
정작 아무런 자료도 갖고 오지 않았다.
급여명세도 없고 회사 명함도 없고.
심지어 회사의 정확한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른다.
지방에 있는 건설 회사라는데.
마치 이 사람은 돈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딸이 돈을 받아 오라고 성가시게 채근을 하니까
등 떠밀려서 오긴 왔으되
현실을 알아보니 부득이하게 돈을 못 받을 수밖에 없더라는 이야기를
딸한테 해주기 위해 통과의례로 온 거 같다.
"그냥 안 받고 중국 갈래요. 비행기표를 사놓았거든요."
기가 막혀서
"회사 전화번호 좀 알아 와요."
"아무도 안 가르쳐줘요."
"그럼 현장에 가서 회사 이름이라도 알아 와요."
"가봐야 소용이 없어요."
"왜요?"
"아는 친구들이 다 떠났거든요."
내가 다른 상담을 하는 동안 그는 말없이 가버렸는데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괘씸하게 여기다가
불현듯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꿨다.
50년 전만해도 우리 부모들이 저랬다.
면사무소 가는 것도 두려워하고
전화도 무서워 못 걸었지.
이제 그런 심약한 사람이 한반도에는 없건만
만주 흑룡강성에는 남아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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