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 중남미권 '반미벨트'의 선봉장을 맡은 차베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던 차에 '잘 걸렸다'하는 식이고, 한국에서는 기자실을 폐쇄하겠다고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를 차베스에 투영시켜 "리모컨 사회주의"(31일자 동아일보), "언론 탄압 오기"(31일자 중앙일보)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논란에서 발을 빼고 베네수엘라 문제만을 조명해 보자면, 차베스의 행동이 부당하기는커녕 <RCTV>의 20년짜리 방송 면허가 만료될 때까지 5년이나 기다린 인내심이 가상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RCTV>는 2002년 4월 반(反) 차베스 쿠데타 당시 쿠데타 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쿠데타 이후에도 차베스를 비난하기 위해서라면 왜곡 보도도 서슴치 않은 몰염치한 언론이란 이유에서다.
미국 최대 통신사 <AP>의 특파원으로 8여년 간 베네수엘라 상황을 취재해 온 바트 존스 기자 역시 30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차베스의 <RCTV> 폐쇄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존스 기자는 <RCTV>가 차베스 지지 집회를 보도하지 않기 위해 불타는 카라카스 거리를 외면하고 쌩뚱맞게도 영화 '프리티우먼'을 틀었던 사례를 지적하며, "미국에 <RCTV>처럼 쿠데타에 조력한 방송이 있었다면 쿠데타 시도가 무위로 끝난 지 5분 안에 폐쇄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존스 기자가 쓴 '우고 차베스 대 RCTV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RCTV(Radio Caracas Television)>의 방송허가 갱신을 거부한 사건은 차베스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비판 매체를 제거하려 한다는 일각의 공포를 정당화시켜 준 것처럼 보인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와 휴먼라이트워치, 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 그리고 유럽의회와 미국 상원, 하물며 칠레 의회까지 베네수엘라의 최고(最古) TV네트워크인 <RCTV>의 폐쇄를 비난하고 나섰다. 29일에 차베스가 또 하나의 비판 매체인 <글로보비시옹(Globovision)>에 대해서도 조사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차베스를 헐뜯는 사람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러나 차베스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그러하듯 <RCTV>의 경우도 잘못된 정보가 횡행하고 있다. 일방의 얘기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반면, 다른 편의 이야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 <RCTV>의 방송 중지는 몇 가지 측면에서는 정말 슬픈 사건이다. 1953년에 만들어진 <RCTV>는 장수 정치풍자 프로그램인 '라디오 로첼라'와 격렬하고 적나라한 심야 연속극 '뽀르 에스따스 깔예스'를 제작해 왔다. 게다가 <RCTV>는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걷는 장면을 베네수엘라 최초로 위성 생중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RCTV>는 다른 방향의 시도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를 쫒아내려 한 것이다. <RCTV>는 회장 마르셀 그라니어를 비롯한 '끝내주게 부유한' 과두재벌들이 쥐락펴락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차베스와 그가 가난한 다수를 위해 주도하는 볼리바리안 혁명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RCTV>가 2002년 4월 11일 차베스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한 쿠데타에 협력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반란이 일어나기 이틀 전부터 <RCTV>는 모든 정규방송을 중단하는 대신 그 시간을 '차베스를 끌어내자'고 주장하는 시위에 대한 보도로 채웠다. 시사평론가들은 차베스에 대한 통렬한 공격을 쏟아냈고 정부의 반론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RCTV>에는 차베스를 권좌에서 쫒아내기 위해 4월 11일 집회에 참여하라고 선동하는 광고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 집회가 유혈충돌로 끝나자, 이번에는 <RCTV>은 <글로보비시옹>과 함께 사상자에 대한 책임을 차베스 지지자들에게 전가하는 왜곡된 영상물을 내보냈다.
군부 반역자들이 차베스를 끌어내리고 차베스가 대중 앞에 모습을 감춘 이틀 간, <RCTV>는 또 한 번 왜곡된 보도 행태로 쿠데타 세력을 도왔다. 당시 차베스 지지자 수 천 명이 차베스의 복귀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지만 <RCTV>는 물론, 다른 어떤 방송국도 이를 다루지 않은 것이다. (관련기사: 미디어 쿠데타: 베네수엘라의 경우)
<RCTV>의 안드레스 이자라 국장은 훗날 국회 청문회에서 방송국 윗선으로부터 쿠데타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차베스와 그 지지자에 관한 보도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도록…분위기가 전환되는 기류를 만들고 '새 나라의 새벽이 밝았다'는 홍보를 시작하도록."
카라카스 거리는 분노로 불탔지만 <RCTV>는 만화나 연속극,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프리티 우먼'처럼 철지난 영화를 방영했다.
2002년 4월 13일에는 그라니어를 비롯한 언론계 주요 인사들이 미라플로레스궁을 찾아 쿠데타 세력이 세운 새 지도자, 페드로 카르모나에게 지지를 요청했다. 그는 이미 대법원과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폐기한 상태였다.
미국에 <RCTV>처럼 쿠데타에 조력한 방송이 있었다면 존속이 가능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미국 정부는 쿠데타 시도가 무위로 끝난 지 5분 안에 <RCTV>를 패쇄해 버리고 직원들을 모두 감옥에 처넣었을 것이다. 차베스 정부는 <RCTV>의 존재를 5년간이나 참아준 다음, 20년 동안 공중파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 갱신을 거부했을 뿐이다. <RCTV>는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 방송은 여전히 가능하다.
그라니어와 그 일당들을 언론 자유의 순교자로 볼 수는 없다. 라디오와 TV, 신문은 여전히 정부로부터 어떠한 검열도, 어떠한 구속도, 어떠한 위협도 받고 있지 않다. 거의 모든 베네수엘라 매체들이 세습 과두재벌들에 의해 운영되고 확고한 반 차베스주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약 그라니어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쫒아내려고 마음먹지만 않았다면, 베네수엘라 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라디오 로첼라'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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