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 이매뉴엘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으로 프랑스가 친미적인 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관측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최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 기고한 칼럼 '프랑스, 드골주의의 종언?'을 통해 "메르켈 총리는 최근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 방어망을 설치하려 하는 미국에 대해 부드러운 언어로 그러나 단호하게 반대의 뜻을 밝히며 자신만의 방식을 선보였다"며 사르코지가 '메르켈 방식'을 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 미국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미국에 프랑스가 필요한 것"
월러스틴이 그같은 주장을 하게 된 것은 2차대전 후 샤를르 드 골 프랑스 대통령이 정립한 국내외 정치의 원칙에서 벗어난 프랑스 대통령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으며, 사르코지의 대중운동연합(UMP)이 기본적으로 드골주의에 뿌리를 둔 정당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 |
2차대전 직후 프랑스 총리를 지냈고 1958년 대통령이 된 드 골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프랑스가 중요하고 독립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는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dirigisme)을 추진하며 △국내정치적으로는 반공주의를 채택하겠다는 '드골주의'를 표방했다.
'삼위일체'로 불리는 그 원칙에 따라 드 골은 핵무기 보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등 미국의 국제전략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렸고, 프랑스식 복지국가 체제를 고수했다. 하지만 드 골은 프랑스는 반공전선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 편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의 불만을 잠재웠다.
월러스틴은 "드골주의의 유산을 포기하는 것은 사르코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사르코지 역시 '영원한 우방은 없다. 영원한 국익만 있을 뿐'는 명제를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현재 프랑스가 챙겨야 할 국익은 어떤 것인가. 월러스틴은 "프랑스는 미국으로부터 얻을 게 거의 없고 오히려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얻을 게 있다"며 프랑스의 1차적인 국익은 유럽과 아프리카에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는 獨佛 관계 긴밀화
그가 꼽은 프랑스의 국익은 △유럽에서 독일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시키는 것 △사르코지의 당선에 대해 아프리카의 과거 프랑스 식민지에서 나오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책에서 비롯된) )우려를 불식시키고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월러스틴은 "사르코지에게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보다 메르켈 총리가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월러스틴은 "사르코지가 주 35시간 노동제를 없애고 조세 개혁을 실시하는 등의 경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복지국가를 붕괴시키려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반공주의에 대해서도 그는 "사르코지는 1968년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말을 해 왔고 그것은 반공주의의 2007년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아 보인다"며 변화 가능성을 낮게 봤다.
드골주의적 국내정치와 관련해서는 사르코지가 "진정한" 중도 정당을 만들어 주류 우파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프랑스 중도파들의 조직을 해체하려 하고 있고 그 작업은 성공할 것이라는 게 월러스틴의 전망이다.
그는 "사회당의 혼란상은 그가 대통령을 연임할 수 있는 정치적 토대를 만들어줄 것"이라며 "그러나 이 모든 것이 1945년 이후 작동해 온 프랑스의 정치적 컨센서스로부터 근본적으로 일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한편 월러스틴은 대중운동연합-사회당이 맞붙은 결선투표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극우파 정객 장 마리 르펜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극우파 유권자들이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진 것도 프랑스를 드골주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요구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진 극우파들은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 그리고 사르코지가 약속한 보수적인 경제정책 따위에 관심이 없다"며 "다만 그가 자신들에게 중요한 아젠다인 반(反) 무슬림적 입장을 대변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원문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