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또르 키르츠네르 아르헨 대통령의 '군정 당시 국가기밀 공개법령' 제정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아르헨의 과거청산 작업이 아르헨은 물론 칠레와 우루과이, 파라과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심지어는 미국으로까지 확대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최근 아르헨 사법부는 "군정기간 동안 좌파 제거작전과 언론탄압을 주도한 극우 무장 사조직 트리플A(아르헨티나 반공연맹)와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은 무관하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그렇지만 1974~76년 반정부 세력제거를 합법화해준 이사벨 페론에 대해서는 재판을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결국 아르헨 사법부는 이사벨 페론 집권기간 동안과 군정기간(1974~83년)에 자행된 반인륜적인 인권유린 범죄행위의 몸통이 트리플A의 책임자인 호세 레가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레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주변 인사들과의 연결 고리 추적에 들어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군정 당시 실질적으로 레가와 트리플A라는 무장조직과 군부를 움직였던 배후 세력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아르헨 사법부는 레가가 반공주의자들인 경찰 간부들과 국수주의자들인 군 장교단을 주축으로 트리플 A를 조직했으며 칠레의 피노체트와 연계해 콘도르작전(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남미의 군사 독재정권들이 합동으로 펼친 반정부 및 좌파 정치인 제거작전)을 주도했던 것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아르헨으로 망명한 다수의 칠레 정치인들이 체포 혹은 살해된 것과 아르헨 거주 스페인계 출신 좌파 정치인들 및 독일계 인사들과, 심지어는 군정의 만행에 반기를 든 프랑스계 수녀들까지 납치해 살해한 공권력의 범죄 행위를 차제에 분명하게 밝히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아르헨 사법부는 군정 당시의 인권유린 사태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1970년대 초 스페인에 망명 중이었던 페론 전 대통령에게 호세 레가를 소개시켜 준 이사벨 페론과 우익테러 조직 책임자 호세 레가의 후견인 역할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로버트 C. 힐 (1917~78) 당시 스페인 주재 미 대사 간의 관계를 밝혀 내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으로 불똥 튄 아르헨티나 과거청산
군정 당시 정치적인 피해자들의 증언청취를 시작한 아르헨 사법부는 최종적으로 이사벨 페론 - 호세 레가 - 로버트 C 힐 전 미국 대사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군정 과거청산의 열쇠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호세 레가나 로버트 힐 대사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유일한 생존자인 이사벨 페론의 증언청취는 필수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아르헨 연방법원은 모든 방법(스페인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방안)을 동원해서라도 이사벨 페론을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70년대 아르헨티나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암살단의 괴수 호세 레가의 후견인이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로버트 힐 미 대사는 1954년 미국의 과테말라 침공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 뒤 그는 코스타리카 대사를 시작으로 엘살바도르-멕시코-스페인-아르헨티나 대사를 거치는 동안 아르헨티나와 칠레 군부의 반란을 지원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되고 있다. (로버트 힐 대사는 당시 미 국무부 내에서 독보적인 중남미 전문가로 스페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과 칠레의 피노체트 등 군부 독재자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다)
현지언론들은 냉전시절 미국 정부가 중남미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좌파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남미의 군 간부들을 포섭해 광범위한 좌파정치인 제거작전을 지원 혹은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페론주의 말살작전과 좌파 정치인 제거작전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었으며 국수주의자이자 극우파인 호세 레가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법부가 극우무장조직 트리플A의 실제 몸통 혐의를 호세 레가에서 로버트 힐 미 대사 쪽으로 옮긴 것 아니냐는 전망도 일부 언론들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아르헨 현지의 <뿌렌사메르꼬수르(APM)> 통신은 최근 "힐 미 대사가 부임한 곳마다 좌익소탕을 명분으로 한 극우 무장 세력들에 의한 대규모 인권유린 사태가 일어난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무리"라면서 "군정기간 동안 아르헨티나 인권유린의 최종적인 책임은 워싱턴에 있다"고 주장했다.
<APM통신>은 또 "힐 대사가 지난 1973~77년 아르헨티나 대사를 역임하는 동안 아르헨 군부 쿠데타와 좌익정치단체 제거를 실질적으로 지원했다"고 폭로하고 "이 과정에서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적극적으로 콘도르작전에 합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아르헨의 군정기간 동안 자행된 잔혹한 인간사냥이 반(反)페론주의자들과 국수주의를 내세운 친미파 군인들, 피노체트, 미국 정부가 합작으로 저지른 공권력에 의한 테러라는 설명이다.
<APM통신>은 군정 당시의 극비문서를 인용해 "남미 전역의 좌파정치인 제거를 목적으로 실시된 '콘도르 작전'은 아르헨티나의 트리플A와 군부, 피노체트, 미 국무부의 헨리 키신저 장관이 주도한 합동작전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러운 전쟁은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때 정치적인 논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던 극우 무장 사조직과 페론 전 대통령 간의 관계는 한갓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페론과 좌파 정치인들은 미소 냉전 시대의 애꿎은 희생자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 이사벨 페론 소환 파동의 최대의 수확이라고 <APM통신>은 보도하기도 했다.
페론당의 이름으로 자행된 무차별한 인간사냥과 인권유린 범죄는 남미지역에서 직접적인 군사개입 없이 좌익세력의 확산을 저지하고 남미 전체를 장악하려 했던 워싱턴 국무부의 대외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군정 당시의 아르헨 군 수뇌부나 중남미 담당 미 관료들은 이에 대해 정부 전복과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좌파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 작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아르헨티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더러운 전쟁'이 당시엔 '테러와의 전쟁'의 외피를 쓰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20년 이상을 지루하게 끌어 온 아르헨 과거사청산의 불똥이 결국 군 수뇌부, 페론 전대통령, 트리플A, 이사벨 페론을 거쳐 마지막으로 미국으로까지 튀고 있는 모양새다.
군정 당시의 인권피해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 역시 일관되게 미국의 책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르헨 사법부가 이에 대해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아직은 미지수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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