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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해지원이 남북 경색 푸는 전기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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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해지원이 남북 경색 푸는 전기 돼야

창비 주간논평 <9> 긴급구호는 민간이, 복구는 정부가

지난 7월 한반도에는 두 가지 큰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을 동시에 강타한 수해다. 미사일 실험발사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안 채택과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의 고립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남쪽에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대북포용정책이 위협받고 있다. 또한 남북은 쌀·비료 지원 중단과 이산가족상봉 중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바닥 모를 관계경색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반도를 강타한 장마로 남북은 대규모 수재를 입었다. 북측은 남측보다 강우량이 적었으나 피해는 훨씬 컸다. 우리 사회는 강원도와 경기도 일부를 휩쓴 남쪽의 피해에 대해서는 정부와 민간, 재계와 언론이 다함께 복구와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 8월 5일에 끝난 국민모금은 880여억 원에 달한다. 이달 말 확정되는 정부지원 규모는 3년 전 태풍 '매미' 때와 비슷한 6조3000여억 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 추측되는 북한에 대해서는 태도가 다르다. 북한에선 몇 달 전부터 수만 명이 연습해 온 국가행사인 아리랑축전도 수재복구로 인해 취소되었다. 다시금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는 비장한 분위기다. 이러한 북한의 1차 피해가 보도된 7월 20일경 우리 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한마디로 '도와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차 피해가 발생한 7월 하순부터 직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엄청난 피해 소식에 우리 사회의 여론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북의 피해는 사망·실종이 300여 명에서 1만여 명, 이재민은 수만 명에서 130만~150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주택·교량·도로·철도·농경지 등의 기반시설 손실도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피해 정도와 규모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지만 개성시의 한 고위인사가 3400여 명이 사망·실종됐고, 95년 대홍수에 버금갈 큰물 피해라고 토로한 발언을 보면 매우 심각한 재난인 것은 분명하다.

대북지원단체와 민화협등 통일단체들의 모금운동과 지원에 이어 한나라당조차 최고위원회 결의로 정부의 신속한 대북 수해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당국간 대화의 빗장을 걸었던 북도 민간단체뿐 아니라 남한정부의 지원에 대해 수용의사를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대규모 참사 때문에 남한사회의 냉담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는 두 차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95~96년 북한은 대홍수와 한해(寒害)로 100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생길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지원요청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대북지원을 외면했지만, 민간이 나선 대규모 지원운동은 남북화해의 물꼬를 트는 성과를 낳았다. 또한 2004년 룡천역 폭발참사 때는 한국정부와 정치권, 민간이 한마음으로 긴급구호와 복구지원에 나섰고 이는 곧 당국간 신뢰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중요한 성과를 낳았다. 정부와 대북지원단체들 간에 좀더 효과적인 사업을 위해 '대북지원 민관정책협의회'가 구성되었고, 룡천참사 같은 북한의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북한 긴급재난에 대한 민관합동 매뉴얼'이 작성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효율적인 재난극복을 위해 긴급구호는 민간 주도, 복구사업은 정부 재원을 가지고 민관 합동으로 추진한다. 긴급구호는 민간의 노력으로 일정수준 대처할 수 있으나 복구사업의 경우는 대규모 재원이 소요되므로 정부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북한 수해를 다시 한번 남북간 신뢰회복의 전기로 선용해야 한다. 적어도 수해지원에 대해 초당적 공감이 형성된 만큼 이제 정부는 민간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앞의 '매뉴얼'에 따라 긴급구호는 민간 중심, 복구는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남북간에 신속하고도 긴밀한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 북은 피해실태를 공개하고 남측인사의 현장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수마가 할퀸 상처는 남이나 북이나 처참하긴 마찬가지다. 솔직한 공개와 현장접근 허용은 남측과 국제사회의 열성적인 지원과 협력을 낳는다. 남과 북의 마음을 연 대응이 '서로 원하지 않는' 남북간 경색을 푸는 열쇠가 된다. 양 당국은 이 과정에서 미사일 파문 탓에 미뤄진 남북의 인도적 사안(쌀과 비료 지원 및 이산가족상봉 등)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한편으론 최근 우리 사회의 대북정책 혼선을 다듬고 차분하게 정론을 수립해야 한다. 북한 미사일 실험은 한반도와 동북아 긴장을 높이고 또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 하지만 북한의 행위는 분명 국제법 위반도, 어떤 남북문제를 겨냥한 술책도 아니다. 주된 성격은 미국과의 직접대화와 유리한 협상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벼랑끝 전술'인 것이다. 6자회담 의제인 북핵폐기와 안전보장 등은 북미간 또는 다자간에 협의할 수밖에 없는 국제적 이슈이자 쉽게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난제이다. 이런 정치·군사적 문제를 남북경제협력이나 인도적 협력과 곧장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더구나 '포용정책을 폐기하고 대북압박의 국제공조에 동참하자'는 일부 인사들의 주장은 지난 10년의 화해협력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는 행위이며 2000년 이전의 대결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아울러 북한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는 바탕 위에서 북핵 등의 정치·군사적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다. 차제에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정치·군사적 문제를 비롯, 경협과 인도지원 등 남북관계의 주요 의제에 대한 원칙을 초당적으로 세워야 한다. 날로 복잡해지고 꼬여만 가는 한반도의 난세를 헤쳐나갈 푯대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북한 수재를 민족화해와 공존의 전기로 선용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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