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는 백두대간 차령산맥 줄기인 치악산이 품은 분지로, 자궁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유신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른 지학순 주교(1921~1993)와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1994)의 생명사상이 움튼 곳이다. 또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5~2008) 역시 '원주'를 가리켜 '땅의 근본, 본래의 땅'이라며 이곳에서 생명사상이 깃든 작품을 써내려갔다.
"내 뜰은 생명으로 충만되어 있다"
박경리 선생은 1980년부터 18년간 원주시 단구동에 머물며 <토지> 4부와 5부를 완성했다. 아침저녁으로 밥 짓는 냄새를 풍겼을 부엌과 집필의 고충을 온전히 받아 안았을 작업실, 그리고 작은 방 한 칸이 원고지 3만 매 분량의 <토지>가 잉태된 공간 전부이다.
1989년 그의 옛집은 단관택지 개발로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전국 각지 문화계 인사들의 건의로 지금은 원주시에서 이 일대를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문학공원은 <토지>에 나오는 지명과 등장인물의 이름 딴 '홍이동산', '용두레벌', '평사리 마당' 외에도 선생의 유품을 전시한 '박경리 문학의 집' 등이 조성되어 있다.
▲ 고(故) 박경리 선생의 작업실, <토지>의 등장인물 2000여 명이 탄생한 곳이다. ⓒ프레시안(이명선) |
작품을 집필하는 내내 그는 호미 한 자루를 들고 땅과 교감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의 텃밭에는 제철 생명이 피고 지고 맺고 영글었으며, 길 잃은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늘 "내 뜰은 생명으로 충만되어 있다"고 말했다.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릴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박경리 시 <꿈> 중
선생은 무엇보다도 생명사상을 존중했다. 그는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문학"이라며 "예술은 바로 생명에 접근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토지>를 통해 그리고자 하는 궁극도 '생명'이었다.
김은철 상지대 국문과 교수는 "박경리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소외문제,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의 흐름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며 <토지>는 생명사상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그게 참여다
-박경리 시 <문필가> 중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박경리의 뜰을 떠나려는 찰나, 최근 한 아파트의 잇따른 자살 사건이 생각났다. 대물림되는 가난과 불치병에 시달려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 사람들. 새삼 문필가의 사랑이, 눈물이, 다독거리는 손길이 절실했다.
▲ '생명사상의 터전, 원주' 1일 여행에 참여한 프레시앙들, '생명'으로 충만한 박경리 선생의 뜰에서 다같이 찰칵. ⓒ프레시안(이명선) |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있다"
원주시 중앙동 밝음신협건물에 위치한 '무위당 장일순 선생 기념관'은 10평 남짓한 크기의 회의실이었다. 무위당(无爲堂) 선생의 생명사상을 담기에, 기념관은 좁쌀만 했다.
황도근 상지대 교수(한살림 연구기획위원)는 '무위당 기념관'을 찾은 프레시앙에게 장일순 선생 사상을 한 시간여 동안 설명했다. 황 교수는 기념관이 조촐한 이유에 대해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라는 선생의 유언 때문"이라며, 12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선생의 수묵전에 대해서도 연신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무위당 장일순 선생 수묵전")
▲ "나는 미처 몰랐네 /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 분명 그대는 나일세" -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잠언집 중 ⓒ무위당 장일순 |
원주 민주화의 핵심이기도 한 고(故) 장일순 선생은 유신정권 말, 80년대 초에 '모두 살아야 한다'며 공생의 논리인 생명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는 1986년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을 설립하고, 큰 차원의 운동보다는 원주를 기반으로 한 지역사회운동에 매진한다. 군사정권으로 엄혹했던 시절,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학생들이 투신하는 와중에 '죽이기'보다 '살리기'를 강조하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그에게는 '변절자'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선생은 90년대 들어 '나락 한 알, 풀 한 포기에도 우주가 있다'며 '좁쌀 한 알(일속자(一粟子))', '하나의 풀(일초(一草))' 등으로 생명사상을 보다 구체화했다. 황 교수는 "'일속자,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있다'는 말에는 무위당 선생의 사상이 모두 깃들어 있다"며 "'모든 원소가 다 모여야 우주가 만들어진다'라는 물리학의 기본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일완지식 함천지인(一碗之食 含天地人), 밥 한 그릇 속에 우주가 있다"
황 교수는 무위당 사상을 '기어라! 모셔라! 늘 함께하라!'로 요약했다.
장일순 선생이 생전에 김지하 시인에게 자주 언급했다는 '기어라'라는 말은 머리 쳐들지 말고 겸손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다음으로 '모셔라'는 손님이 오면 밥 한 끼만 잘 대접하라는 뜻으로, '밥을 내 생명처럼 여겨라'라는 생명사상이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함께하라'는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싸움을 경계한 말로, 사리사욕을 멀리하라는 조언이다.
황 교수는 "무위당 선생이 '바닥의 사람들을 위해 살지 않으면 모든 운동은 이뤄지지 않는다'라고 했다"며 지역공동체를 강조했다. 그는 또 선생의 말씀 중 "모든 문제는 다 자기 안에 있다. 남을 향해 고개 숙이지 말고 나를 향해 고개 숙여라", "생명이라는 것은 높고 낮음이 없고 모두에게 골고루 있다" 등에 대해 설명했다.
'얼굴 난초'로도 유명한 무위당 선생은 서화에 능했다. 황 교수는 선생이 직접 쓴 "인파출명 저파비(人怕出名 猪怕肥,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를 가리키며 "요즘 정치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요란스럽지 않고 진중한 느낌"
프레시앙의 마지막 여정은 '민생·생태·신화·평화'를 주제로 김봉준 화백의 작품이 전시된 '원주역사박물관'과 '오랜미래신화박물관'이었다. 김 화백은 림프선 암으로 생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 원주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곳에서 기적적으로 소생했고, 이후 그의 작품에는 영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오랜미래신화박물관'이 위치한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는 '생명사상의 터전, 원주'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 화백은 여기서 모태 신화에 뿌리를 둔 동아시아 문화에서 '정체성의 원형'을 찾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16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영적인 미 형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다 죽어가는 체험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생명사상을 직접 겪은 것이다. (☞관련 기사 "아름다움을 서열화할 수 있나…삶도 마찬가지")
▲ 김봉준 화백이 원주에 세운 '오랜미래신화박물관' 내부 ⓒ프레시안(이명선) |
원주로의 1일 여행을 함께한 프레시앙들은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을 자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프레시안 10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에도 참석했다는 박혜실(49, 서울 강남구) 씨는 "박경리·장일순 선생을 알고는 있었으나 현장을 직접 가봤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며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밝혔다. 박 씨는 <프레시안>에 대해 "요란스럽지 않고 진중한 매체"라며 창간 11주년 축하 인사를 건넸다.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정지훈(40), 박범수(41) 부부는 "하루 여행이어서 부담이 없었다"라며 "프로그램이 잘 짜여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 박 씨는 <프레시안>에 "사건 위주의 다급한 상황보다는 기획 기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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