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프랑스의 좌파 학생운동 지도자로 활약했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Bernard-Henri Levy)는 스탈린주의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마르크스주의 포기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는 1977년에 나온 그의 책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에서 이렇게 말하기조차 합니다.
"사회주의는 1848년 파리에서 태어나 196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여기서 1848년은 유럽에 일대 민중혁명의 물결이 휩쓴 시기였고, 1968년은 프랑스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과 미국에 반전운동 등 신좌파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968년에 좌파는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등장했다고 할 수 있는데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이 프랑스 민중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한 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앞세우는 실책을 범해 당시 프랑스 사회가 바라고 있던 것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 좌파가 소련 공산당의 입장에 신경을 쓰면서 프랑스 사회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이 좌파의 몰락에 대한 예견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좌절과 환멸은 한 가지 매우 중대한 역사적 현실을 간과한 것으로 그 뒤 비판받게 됩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권력을 잡은 사회주의가 인민의 이름으로 야만적인 정치를 전개해 나갔던 것도 사실이었으며, 유럽의 좌파가 당시 주체성을 잃고 스탈린주의에 휘둘렸던 것도 맞는 지적이었습니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깊이 주목하지 못했던 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세계 자본주의가 그 이전의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제국주의 시대 못지않게 비서구 지역을 약탈하고 착취해나가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지구촌에 전쟁과 인권유린, 빈곤의 심화와 양극화의 구조적 결과들을 가져오는 데에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파고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기존 사회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곧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확인해주거나 그 구조적 야만을 극복하는 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가 뒤이어졌던 것입니다.
기존의 사회주의가 과연 대안인가라는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기본적으로 재생산하고 소수 특권계급이나 계층의 정치적 발언권을 강화하는 현실에 눈을 감아도 되는가의 문제는 그에 못지 않게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세력은 여러가지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전의 열정과 희망 그리고 초심을 버리고 기득권 진영에 투항하고 그 자신이 또한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되는 것은 보기에도 그렇고, 이 나라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도 옳지 않은 선택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건 발전적 변화가 아닌, 변절입니다.
특히 이른바 일부 386세대 정치인들의 보수화와 기득권 세력이 되고 있는 것은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앙비 레비는 철학적 고뇌라도 했지 이들은 대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에도 고민하지 않고, 미국의 전쟁정책에는 아예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민중들의 고단한 삶은 이들의 관심사에서 이미 비켜나고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복종이 체질화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정치에 뛰어든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본래의 역사적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는 그런 지도자, 그렇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요? 권력을 쫓다가 역사에 의해 저버림 받게 된다는 것을 여태 그리도 모르는 것일까요?
젊은 세대인 이들의 변절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아니 본래부터 그랬는데 그만 잠깐의 현란한 몸짓에 속아 잘못 봤는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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