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의 추억〉의 제작진들은 주인공 게이샤인 사유리, 그리고 사유리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선배 게이샤 하츠모모 역의 캐스팅을 놓고 고심고심을 거듭했다. 사유리와 하츠모모로 어떤 여배우를 캐스팅하느냐에 〈게이샤의 추억〉의 성패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캐스팅 기준은, 특정 국적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와 전세계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매력과 연기력을 갖추고 있을 것,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영어대사의 영화인만큼 어느정도의 영어구사력을 가지고 있을 것 등이었다.
일본에서는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여배우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제작진의 시선은 자연히 중국 쪽으로 향했다. 사유리와 하츠모모를 연기할 중국 여배우는 누가 뭐라해도 두 명 뿐이었다.장쯔이와 공리. 문제는 두 사람의 관계가 그리 우호적일 것 같지 않다는데 있었다. 한 사람은 중국이 배출한 최초의 월드 스타, 또 한 사람은 무섭게 떠오르는 별이다. 그 자체가 〈게이샤의 추억〉 속의 하츠모모와 사유리의 긴장관계와 너무나 흡사했다. 하지만 그것말고도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장이모 감독이란 하나의 끈으로 두 배우가 묶여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사람은 장이 모의 예술적 파트너이자 오랜 연인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장이모가 '제2의 공리'로 키워냈으며 그의 새로운 연모 대상으로 소문이 났었던 배우다. 두 배우 사이에 '여자'로서 어떤 감정이 흐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제작진은 먼저 에이전트를 통해 공리의 의사를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상대역인 사유리로 장쯔이를 캐스팅하려고 하는데 의향이 어떠신가요." 공리의 대답은 의외로 '화통' 그 자체였으면서도, 중국 최고배우로서의 자존심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었다. "위대한 연기자는 누구와도 연기할 수 있다. 상대방도 위대한 연기자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공리 자신은 위대한 연기자라서 장쯔이와 문제없이 연기할 수 있지만, 장쯔이가 위대한 연기자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11월 〈게이샤의 추억〉을 커버스토리로 보도하면서 공개한 에피소드다.
***아카데미에서 오스카 수상 가능성 높아**
공리가 오는 3월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가슴에 품을 수있을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공리의 카리스마넘치는 연기가 격찬을 모으면서, 최근들어 할리우드에서 공리의 주가가 껑충 뛰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장쯔이는 오는 16일 개최되는 골든글로브영화상 여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타임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는 최근 기사에서 "연기를 살아숨쉬는 예술로 승화시킨" 미국배우 6명(스칼렛 요한슨 〈매치포인트〉, 캐서린 키너 〈카포테〉, 테렌스 하워드 〈허슬&플로〉 〈크래쉬〉, 토미 리 존스 〈멜퀴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번의 매장〉,오웬 클라인 〈오징어와 고래〉, 마리아 벨로〈폭력의 역사〉)과 함께 〈게이샤의 추억〉과 〈2046〉 〈에로스〉의 공리를 꼽으면서, "이중 몇몇은 각종 영화상 시상식에서 여러 번 이름이 불려지는 것을 듣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콜리스는 공리의 하츠모모 연기를 "전성기 때 베티 데이비스 이후 최고의 악한 여신"이라고 극찬했다.
공리는 〈게이샤의 추억〉을 계기로 할리우드 영화출연을 본격화할 계획으로 있다. 마이클 만 감독과 TV 히트 수사물 〈마이애미 바이스〉를 스크린에 옮긴 동명영화의 촬영을 이미 시작했으며, 이른바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전편에 해당하는 〈영 한니발: 가면 뒤에서〉의 출연도 확정한 상태다. 지난 1997년 웨인 왕 감독의 〈차이니즈 박스〉 이후 미국영화계의 손짓을 사실상 거부해 왔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공리자신도 "영어 연기가 더 이상 큰 장벽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옛 연인 장이모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사람이 결별한지 약 12년만의 첫 만남이다.
65년생이니까, 공리의 나이도 이제 마흔 하나. 미모의 전성기는 넘겼을지 모르지만, 공리의 연기는 이제 제2의 전성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 왕자웨이의 〈2046〉 〈에로스-그녀의 손길〉에서 섬세하고도 강렬하며, 농염함과 상실의 고통이 묻어나던 멋진 연기를 그가 과연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도 얼마나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우려가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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