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를 움직이는 3퍼센트, 그에 속하는 최상류사회의 복잡한 혈연관계. 이들이 어느 날 아무도 접근하기 어려운 펜트하우스에 모입니다. 카드를 들고 도박판을 벌이다가 결국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 머리에 총알이 하나 든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 룰렛 게임이 벌어지게 되고 그 게임을 벌인 주인공을 빼고는 모두가 희생되고 맙니다.
이제 나이 삼십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연기자 유지태가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연극 "육분의 륙(戮)"은, 돈과 권력을 장악한 이들의 추악한 내면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기묘한 테러리즘으로 극을 완결시킵니다. 제목 "육분의 륙"의 "륙"은 죽일"륙"자라는 점에서 이 극의 결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인 재벌 총수가 뿌려놓은 간단치 않은 혈연관계에서 서로 얽힌 이들은 재벌 3세인 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중심으로, "욕망으로 다져진 비열한 자본", "부패한 언론", "족벌체제", "타락한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이 모두 혈연관계라는 설정은 한국사회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친인척이면서 서로에 대한 진정한 애정은 눈꼽만치도 없습니다.
주인공인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어느 날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난데없이 탄환 한 발이 들어 있는 6연발 리볼버 권총으로 돌아가며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는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이들을 모두 살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이 이들을 죽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스스로 죽는 방법을 택하게 하는 쪽이었습니다. 기묘한 테러리즘의 시작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과연 이 게임에 끌려 들어올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주인공의 계획은 애초부터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주인공 역시도 그 리볼버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데, 게임이 끝나기 전 자신도 희생될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간에 모두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의 확률은 6분의 1.
그러나 주인공은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나는 6분의 륙, 즉 100퍼센트의 확률로 자신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게임을 시작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3퍼센트에 속하는 자들에 대한 테러리즘의 게임을 가동시킬 수 없었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게임이 러시안 룰렛이라는 점은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가 연속되었던 제정 러시아의 역사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김지하가 담시 〈오적(五賊)〉을 써냈던 시대는 어느 새 수십 년의 세월 저편에 있지만, 오적에 속하는 이들의 존재와 이들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젊은 세대로 하여금 오늘날 리볼버 권총의 러시안 룰렛 게임으로 "육분의 륙"의 결말을 지향하게 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테러리즘이 무대 위에서는 서스펜스 잔혹극이라는 이름으로 올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기득권이 회전문처럼 돌아가면서 3퍼센트에 속하는 그들끼리 만의 펜트하우스에서 돈과 권력에 대한 도박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나머지 97퍼센트 가운데서도 대다수의 서민들은 회전문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 이들 최상류 3퍼센트는 그 회전문처럼 생긴 리볼버에 역사의 탄환이 하나 장전되어 있는 것은 알고 있을까요? 강추위 앞에서 농민들의 분노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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