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전세계에서 6억달러(약 6000억원)의 '슬립퍼 히트(아무도 예상치못했던 히트)'를 기록한 이후,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중대한 변화 중 하나는 이른바 기독교 영화의 흥행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기독교 신자 관객층은 결코 '니치 마켓'이 아니며, 폭발적인 흥행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란 점에 영화 관계자들이 새삼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교회와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홍보 마케팅이 유례없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기독교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 패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곧 국내외에서 개봉될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반지의 제왕〉의 J R R 톨킨과 함께 영국 판타지문학을 대표하는 양대 문호로 꼽히는 C S 루이스(1898~1963) 가 쓴 '나니아 연대기'는 강력한 기독교적 알레고리로 유명한 걸작소설이다. 최근 영국 문화계에서는 저명한 작가 필립 펄만이 영국의 주간지 '옵저버'에 〈나니아 연대기〉를 겨냥해 '인종차별주의와 얄팍한 기독교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하고 나서면서 찬반 논쟁이 맹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의 영화화가 처음 발표됐을 당시, 기독교계에서는 루이스의 기독교 철학이 문학의 형태로 집대성된 이 작품을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의 시선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루이스 자신도 생존 당시 영화에 대한 불신이 깊었고, '나니아 연대기'의 영화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해 왔었다.
***기독교 신자 관객 끌어 들이기 위해 열 올려**
그러나 개봉을 앞둔 현재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시사회 반응이 좋은데 힘입어 제작사인 디즈니측이 교회와 교인들을 겨냥한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디즈니는 멜 깁슨의 영화사 아이콘 프로덕션과 손잡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모티브 엔터테인먼트와 〈브루스 올마이티〉 〈킹덤 오브 헤븐〉의 교회 관련 마케팅을 진행했던 그레이스 힐 미디어와 계약을 맺는 등 기독교 신자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LA타임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교회, 목사, 신도, 그리고 스카우트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갖는가 하면 DVD를 배급해 신앙교육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미국 뉴욕의 일간지 '빌리지보이스'의 영화평론가 앤소니 카우프먼은 6일자 인터넷판에 게재된 '헤븐리 피쳐스'란 제목의 글에서 "최근 할리우드에서 크리스천 엔터테인먼트가 급성장하고 있다"며 "〈나니아 연대기〉는 단순히 디즈니사가 만든 또다른 가족영화가 아니라 기독교 우파들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보다 큰 스케일로 성공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 즉 기독교 메시지 영화가 오락산업의 주류로 편입했음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할리우드 '크리스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월든 미디어의 필립 앤슈츠가 〈나니아 연대기〉 제작에 상당액수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앤슈츠는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 억만장자'이자 여성의 낙태선택권과 동성애자권리에 대한 반대운동가로 유명한 인물. 그는 지난해 월든 미디어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독교) 메시지가 담긴 가족영화들에 적극 투자하거나 직접 제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었다. 〈넬〉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신작 〈어메이징 그레이스〉, 선교사 출신 아동소설가 캐더린 패터슨의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를 바탕으로 한 동명 작품 등이 월든 미디어가 추진 중인 작품들. 월든 미디어와는 별도로 〈터미네이터〉의 제작자인 게일 앤 허드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물인 〈막달레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쪽 요구로 시나리오가 수정되기도**
기독교 전문 마케팅 회사인 그레이스 힐 미디어의 조너던 보크 대표가 최근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회사가 올해 마케팅을 진행한 영화는 11편이며, 내년까지 10여 개 영화사와 계약을 끝낸 상태다. 이런 회사들은 영화가 만들어진 후 교회 또는 교인대상으로 홍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작 과정에서 교인들의 반응을 모니터하기도 한다. 영화 〈다빈치 코드〉가 예수 결혼설 등 민감한 내용 때문에 기독교계의 반대 여론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미리 기독교 전문가와 교인들을 대상으로 시나리오 검사를 받았던 것이라든지, 제이미 폭스 주연의 〈레이〉가 교인 시사에서 욕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사 일부를 수정했던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액트 원 (Act One)이란 회사도 등장했다. 이 회사의 대표인 가톨릭 수녀 출신의 바버라 니콜로시는 최근 '스크린 뒤; 신앙, 영화, 문화에 대한 할리우드 인사이더들'이란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니콜로시는 '빌리지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좌파 세속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인들이 미디어와 문화계를 접수하고 있다는 아이디어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무조건 종교 프로파간다로 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라고 주장했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극장가에서 피터 잭슨의 〈킹콩〉, 롭 마셜의 〈게이샤의 추억〉과 함께 뜨거운 대작 흥행 3파전을 벌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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