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범죄정권입니다." 버시 아메리고 대통령은 몰려든 기자들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런 버시를 보고 있던 코레아 특사인 버시바가 맞장구를 치듯 덧붙였다. "노쓰 코레아도 범죄정권입니다."
버시와 버시바 두 사람은 자기들의 말이 왠지 흐뭇했던지 서로를 쳐다보면서 벙실벙실 버시스럽게 웃어댔다. "버시스럽다"는 말은 요즈음 청소년들 사이의 은어로 "좀 모....."라는 뜻이라고 한다.
기체가 코레아 반도 상공에 들어서자 버시바 특사는 만감이 교차했다. 코레아에서 그는 총독의 지위에 버금가는 위상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노서아에서 수행했던 작전을 곰곰이 돌아보았다.
이제 세계에서 식민주의자가 손을 대지 못한 단 하나 유일하게 남은 처녀지 노쓰 코레아. 아메리고는 그 땅에 대한 유혹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잘만하면 지금 용틀임하고 있는 저 진나라의 위세를 측면에서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를 장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아메리고는 노쓰 코레아가 다른 나라와 함께 합의한 사항들을 이행하라고 요구해오자 골치가 아파졌다. 아메리고 자신도 분위기상 할 수 없이 서명한 문서를 들고 나타난 노쓰 코레아 특사 앞에서 아메리고 국무장관도 다른 어떤 대꾸를 하기가 어려웠다.
노쓰 코레아 특사는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핵문제를 해결할 테니 아메리고도 더 이상 노쓰 코레아를 적대시하지 말고 잘 지내자는 것이었다. 서로 적의를 거두자, 좋은 말 아닌가?
도대체가 문제를 삼을 수 있는 건덕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메리고는 코레아 반도에서 더 이상 군사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지고 만다. 적이 없는 아메리고 군사의 주둔은 정당화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아메리고는 코레아 반도에서 물러서야 할지도 모른다.
버시바는 속으로 절규하듯 외쳤다. "평화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평화는 우리에게 적이다." 그는 평화를 향해 "Freeze(거기 꼼짝마라!)" 하고 재빨리 총을 겨누는 흉내를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마침 지나던 여승무원이 놀란 표정이 되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평화는 한사코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으로 성장해온 아메리고의 주도권은 붕괴될 수도 있다. 버시바 코레아 특사는 작심을 했다. 노쓰 코레아를 범죄국가로 계속 낙인찍자, 그래야만 아메리고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다.
노쓰 코레아가 핵을 포기하고 아메리고와 잘 지내자고 하면, 세상은 노쓰 코레아를 평화국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 나라를 적대시하고 있는 아메리고는 꼴이 우습게 된다. 코레아의 총독 관저에서 지내는 날에도 그는 여전히 이 생각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아, 우린 경찰이 아닌가? 세계의 경찰. 귀신 잡는 해병, 아니 범인 잡는 경찰로서 아메리고의 저 찬란한 역사는 시작이 되었고 글로리 글로리 아메리고의 찬가는 온 세상에 자랑스럽게 울려 퍼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버시바 특사는 짐짓 비분강개하는 표정이 되더니 평소 취미생활로 치던 드럼을 마구 두드려댔다. 서울의 새벽은 고요했다. 그러나 난데없는 드럼 소리에 깨어난 이웃집에서 소란이 일었다. 어떤 자식이 이 밤중에 난리야?
다음날 아침 조간에는 아메리고의 정보국이 이런 저런 나라에 비밀 수용소를 운영해온 사실이 대서특필되고 있었다. 신문을 펼쳐든 버시바 특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언론의 자유란 국익에 백해무익이야.
유로파에서 아메리고를 국제전범 재판에 회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유로파의 기소이유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길거리에서 남의 나라 국민을 함부로 유괴해 수용소에 처박는 아메리고는 범죄정권."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베트남 전쟁 관련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했던 다니엘 엘즈버거의 말이 환청처럼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 전쟁은 범죄야." 버시바의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뒤에서 경찰이 자신을 바짝 뒤쫓아 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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