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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 또는 에미나이들이, 아!"

김민웅의 세상읽기 <152>

여자를 가리키는 말은 여러 가지입니다만, 그 가운데 "계집", "가시내", "에미나이", 그리고 "어머니"를 한번 따져 봅시다. 어머니를 빼놓고는, 여기서 보기로 든 말들은 대체로 여성을 낮춰보거나 깔보는 뜻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말들이 여성에 대한 멸시의 의미로 쓰였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자권의 위력이 우리생활에서 으뜸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여성, 부인, 처, 모친, 숙모 등이 더 품위 있고 격조 있는 말처럼 제도화된 것에 지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계집"은, "아내"가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의 진화라고 하듯이 이 역시 "집에 계신 존재"라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고, 쌀의 겉껍데기 몸인 "겨"를 연상시켜 "생명의 알갱이가 들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겨/집"에서 "계집"으로 음운적 변화를 보였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뒤의 뜻풀이가 더 마음에 다가옵니다.

쌀 알갱이가 겨로 둘러싸이지 않으면 자라날 수 없듯이, 이 말은 여성을 생명을 품는 존재로 인식한 것을 드러냅니다. 북쪽 지방에서 쓰이는 "에미/나이"라는 말도 "어미로 태어난 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시내"도 "가시/나이"의 준말이라고 본다면, 이 또한 "가시로 난 이"라는 뜻풀이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가시"는 옛말에서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부부를 의미하는 "가시버시"가 그런 흔적인데, 가시는 나중에 "각시"로도 변해서 쓰이게 됩니다. 여기서 "버시"는 그 본말인 "벗", 가장 친한 사이, 그러니까 서로 감출 것이 없이 다 벗고 통하는 그런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런데 "가시"가 왜 아내인가? 아마도 "가시"의 본말인 "갓"이란 어떤 경계선을 막 벗어난 상태, 그래서 "갓 태어난", "갓 난 아기", "갓 시집 온" 등이 떠올릴 수 있는 "새로움"이 그 존재의 특성으로 파악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가시"를 얻으면 그 인생이 새로워진다고 해서 그런 것일까요? 어원연구라는 것이 본래 상상력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니만큼 아닌게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의 면모도 좀 있습니다.

"어머니"는 인간 최초의 모음 발성 "엄"과 존재의 높임말 "니"가 합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니"는 크다는 말 "한"의 변용 "할"을 붙인 "할 어머니"와 이의 준말 "할머니"의 "니", "아주머니", "아주버니", "오라버니" 그리고 "언니" 등등에서 보이지요. 이 "니"는 좀더 격이 높아지면 그에 "ㅁ"이 붙어 "님"이 되기도 하지요. 어쨌든, "어머니" 대신 "엄니"라는 말도 쓰이고, 이 "니"가 떨어져 나가면서 친근한 말로는 "엄마"가 있지요.

이 "엄마"의 "마"도 엄마처럼 큰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분화해서, 여성들이 쓰는 놀라는 말인 "어마마", "대단히 크다"의 "어마어마한", 또는 대왕대비의 "어마마마", 그리고 "마"와 "니"의 보다 높임말인 "님"이 합체되어 대감댁 부인을 부르는 "마님" 등이 나오게 됩니다. 결국 여성을 의미하는 말에는 생명의 집, 어머니로서의 존재, 새롭게 하는 능력, 그리고 크고 높은 존재라는 뜻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그런 판국에 "난자 매매", 그건 이러한 여성의 소중한 생명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아닐까요?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성의 경우에도, 자신의 품에서 길러내면 그것이 곧 자신의 생명, 사랑하는 자녀가 되지 않을까요? "난자"를 파는 것은 생명의 집을 팔아넘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아마도 팔아넘기지 못할 것이 없게 될지 모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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