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우산 속의 사람들이 외롭게 보입니다. 마치 그것은 자연이 만든, 어떤 차단된 좁은 울타리에 갑자기 가두어진 존재처럼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와 우산, 그 미세한 빈틈을 비집고 빙 둘러쳐진 듯한 투명한 경계선, 그 밖으로는 나가면 안 되는 줄로 아는 표정으로 사람들이 열을 지어 걷습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왠지 고독한 행렬입니다.
그러나 우산 속으로 몸을 감추고 걸어가는 이들은 때로, 한동안 잊고 있던 자신과 함께 짧은 여행을 하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공개된 툭 트여진 광장에 예기치도 않게 이동식 밀실이 마련된 셈입니다. 누구도 엿들을 수 없고, 누구도 함부로 들여다 볼 수 없고, 또한 누구도 허락 없이 밀치고 들어설 수 없는 자신만의 사적 공간을 즐기는 기쁨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편, 평소에는 작은 일에도 소란을 피우며 번잡했던 도시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비를 맞고 서 있습니다. 본래부터 도시였던 곳은 없듯이, 비를 맞으면 거리는 도시 이전의 향수(鄕愁)를 기억해내는 모양입니다. 도시의 발뿌리까지 적시는 빗줄기에서 대지의 흙냄새가 피어오르고, 아스팔트 밑으로 스며드는 습기가 지구의 체온을 식혀주고 있습니다.
초식동물들이 길을 냈던 곳에 뚫린 널따란 도로와, 호박과 옥수수가 자라던 자리에 쌓아올린 높은 집들이 가을 비 속에서 흑백필름으로 남겨진 예전의 풍경을 환상처럼 떠올리게 합니다. 진창이 된 길을 장화를 신은 발로 디디는 소년과 우비를 걸치고 자전거를 타는 사나이들이 그 풍경 사이로 지나갑니다. 바람으로 찢겨나간 비닐우산을 그대로 움켜잡고 다시 그 바람을 마주하며 힘겹게 걷는 가난한 차림의 중년의 여인들도 목격됩니다.
장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도 사라졌고, 무겁고 투박한 우비를 걸치고 나서는 사나이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비닐우산은 초라한 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입니다. 포장된 도시에서 가을비는 자신이 반가운 존재인지, 아니면 달갑지 않은 손님인지 알지 못한 채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 유랑자처럼 예고도 없이 혼자 왔다가 인기척도 없이 그냥 떠나고 맙니다.
하지만 가을은 내리는 비로 한층 아름다워집니다. 도시는 정겨워지고 거리는 어느덧 망각의 절벽에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산 속의 고독은 도리어 가슴 아린 그리움이 되어 삭막했던 영혼에 부드러운 생기를 채워줍니다. 온 몸에 비를 맞고도 진창이 된 흙을 쥐고 놀던 소년은 어느새 성큼 어른이 되어 가파른 언덕 길 위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웃고 서 있습니다.
가을비가 시처럼 내리고 있습니다. 우산을 펼쳐든 이들은 모두 시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마음 속 깊이 내리는 빗물도 그 시의 운율에 따라 노래가 됩니다. 도시는 더 이상 외롭지 않고 거리의 행렬도 침묵의 대열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만나게 해주는 시간을 가을의 비는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산 안의 공간은 그래서 또한 더 이상 좁지 아니하며, 쓸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걷고 싶은 이가 가슴 벅차게 저기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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