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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분당을 피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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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분당을 피할 수는 없을까?

[남재희 칼럼] 본래 광범한 연합형태가 진보의 길

먼젓번 글에서 헨리 키신저가 대학 학부 시절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과 <판단력 비판>을 비교 검토하는 훌륭한 논문을 3개월 만에 썼다는 일화를 여담 삼아 소개했더니 관심을 끌었다는 이야기다.

내친김에 일화 한 가지 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꽤 유명했던 고어 비달(Gore Vidal, 소설가)의 부음 기사가 영국<이코노미스트>에 한 페이지로 났는데 거기서 보니 비달이 14세 때에 이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통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놀라운 조숙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글쎄, 14세 때 사마천의 <사기>를 완독했다고나 할까.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분열과 진통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기피하고 싶은 일이다. 너무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고 짜증스러운 일이기도 하여 당분간 모른 체 외면하고 있는 것이 편할 것도 같다. 그리고 분당이 기정사실화되어 가는 때, 이러쿵저러쿵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때늦은 이야기 같기도 하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 가운데 "한여름 돼지고기를 먹으면 잘해야 본전"이란 게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논하는 일도 혹 비슷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통합진보당 혁신모임의 유시민 조준호 심상정 노회찬. ⓒ연합뉴스


나는 진보정당이 잘 되는가 싶으면 사단이 나는 것을 보고 이런 가정적인 판단을 내려보았었다.

민주노동당이 잘 되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예상 밖으로 많이 나오니 2008년 민노당이 분열되었다. 진보신당인가가 갈라져 나갔다. 비례대표 후보 인선권을 갖는 당권 싸움이 치열해지고 거기에서 패한 쪽이 갈라선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판단했다. 이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막강한 국회의원을 대여섯 명씩 지명하는 권한을 놓고 서로가 흥분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번에도 지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좋은 성적을 내고 (새누리당에 패배했다는 견해도 있으나, 나는 득표율 등을 볼 때 비겼다고 본다) 대선에서 이기면 연합정권을 구성한다는 논의가 현실감 있게 나오자, 통합진보당 측 인사들 사이에 연합정권 참여와 각료 자리 3,4개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래서 당권 싸움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열세인 쪽이 다시 갈라서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우선의 짐작이다. 길조(吉兆)가 흉사(凶事)가 되어버린 격이다. 이러다가 분당이 습관화되겠다.

갈라서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비슷비슷하다. 이른바 '종북'이고, '패권주의'이다.

먼젓번 갈라설 때 보면 '종북'이란 말이 주조였다. 조승수 당시 의원이 첫 제기자였고, 심상정 의원 등이 뒤따랐었는데, 심 의원은 근래에 인터뷰에서 자기는 '종북'을 말한 바 없고 '지나친 친북'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북', '친북'… 헷갈린다. 보수 거대 언론들이 크게 문제 삼아 '종북'은 요즘 시대의 '에비(순 우리말, 아이들에게 무서운 가상적인 존재나 물건: 편집자)'가 되었다. 철저한 개념 규정도 건너뛴 채 그 '에비'가 사람들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종북'을 말할 때 그 근거로 삼는 것을, 언론에 보도된 것을 대충 종합해보면, ① 북핵 ② 북한 인권 ③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태도이다. 북핵은 무조건 규탄해야 한다. 북한 인권을 옹호해야 하고 그 탄압을 성토해야 한다. 3대 세습은 개명된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왕조시대를 방불케 하는, 시대착오로 비난해야 마땅하다. 거기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이면 '종북' 딱지가 붙는다. 대충 그런 공식인 것 같다.

언론에서 통합진보당에서 '종북'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이른바 '구당권파'의 공식적이고 통일된 주장을 읽은 게 없다. 그쪽 사람들의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다. 그 산발적, 단편적 보도들을 보면 철없는 발언들이 많다. 그중에는 정말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듯 한 것들도 있다.

근래에 무게를 싣고 두드러지게 부각된 발언은 이석기 의원의 '종북'보다 "종미(從美)가 더 문제다" 라는 것이다. 쉽게 무시하거나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종북'이 문제라면, 비중은 다르겠지만, '종미'도 문제인 것은 이론상 분명하다. 우리는 너무 미국 비판에 겁을 먹고 있기에 그런 발언이 불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말을 할 자유도 있어야만 한다.

어느 잡지의 대담에서 '종북'의 3대 문제점이 거론되었을 때에 나는 "긴 논문만큼의 설명이 필요한 상황에 관해 '예스'나 '노'와 같은 단문단답(短文短答)을 요구하는 논법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첫째로 북핵 문제를 보자. 그것이 흑백으로 간단한 문제라면 그동안 왜 10여 년에 걸쳐 북한과 미국이 협상을 계속하고 있으며, 또한 이른바 6자회담은 왜 지루하게 열리고 있는 것인가.

북한은 6.25 남침이란 원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 후 세계 최강의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여 있고 때로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군사 연습으로 그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해 볼 일이다.

예를 들어, 아들 부시 대통령은 북한 정권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며 '레짐·체인지(체제 전복)'를 암시하였다. 명분 없이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는 미국인데, 북한이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핵무기의 제거와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안전보장 조치의 마련, 보상·원조 등의 협상이 북·미간에, 6자회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문단답형으로 북쪽만 규탄을 하고 그칠 수가 없는 사정이다. 긴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북한은 실패한 체제이다. 그러나 그것과 평화유지의 문제는 별개다.

둘째로, 북한 인권 문제. 이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므로 판단이 비교적 쉽다. 그러나 실제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나가야 하느냐 하는 차원이 있다. 인권 탄압을 규탄만 하고, 풍선을 북으로 날려 보내는 것만이 능사냐는 것이다.

핵 등 안보문제에 관한 협상을 하루속히 진행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밀접히 관련된다. 인도적 지원을 하여 그들의 생활을 돕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양한 노력이 있을 수 있다.

셋째로, 3대 세습. 왕조시대가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참 어처구니가 없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남북 간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상대해야 할 당사자가 아닌가. 비난만 하고 있다고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문제는 '접어두고' 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체제 간 대화에 있어서 '내정불간섭의 원칙'이 있다.

그러한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문제들을 당내 정파끼리 단문단답식으로 다루다 보니 문제가 증폭되었다고 보이기도 한다. 물론 학생운동의 연장선에서 그 혈기와 치기를 함께 유지하고 있는 이른바 NL파 사람들도 하루빨리 구각(舊殼)을 탈피하고, 세상을 납득시킬 수 있는 합리성을 찾아야겠다.

'패권주의'. 이야기가 간단하고도 까다롭다.

당내에 정파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전제하자. 가령, 5년 전 한나라당에서 이명박계와 박근혜계가 대권 후보를 놓고 결전을 벌여 이명박계가 이겼고, 박근혜계는 5년간 와신상담,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타협이 있을 수 없는 전부냐, 전무냐 하는 대결이었다. 그때 '패권주의' 운운하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인가. 한 표 차이로 다수가 되고, 소수가 될 수도 있다. 그게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니 어쩌겠는가. 다만 다수가 당직을 모두 독차지하는 등 독식·독주 체제로 나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럴 때 '패권주의'란 말이 성립된다.

신문에 보니 전교조 출신의 정진후 의원이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칫 또 다른 패권주의로 흐를 수도 있다"고 관심 가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려운 이야기다. 그만큼 애매하다는 말도 된다. 따라서 분당의 명분으로는 약한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분명하게 남는 것은 비례대표 경선에서의 부정투표의 문제이다. 이것이 시발점이기도 하다. 또 부수적으론 당내 폭력사태의 문제도 있다. 이것들은 통합진보당의 자체 역량으로 충분히 해결할 일이다. '구당권파'측에서도 '대리투표는 관행'이라는 말로 책임을 면하려 할 것이 아니라 당내 경선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개선방안과 당의 민주적 운영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국가) 사직 당국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이미 사직 당국이 일부 개입하고 있기도 하다. 그 귀추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보도에 보니 의원총회에서 중립파인 김제남 의원이 이석기·김재연 의원 두 명의 제명이 아닌 이석기 의원 한 명의 제명이란 타협안을 냈다고 하는데 '신당권파' 측이 왜 그 타협안을 수락 안 했는지 궁금하고도 아쉽게 생각된다. 최근 <진보정치>에 난 홍용표 서울시당위원장 인터뷰를 보니 그는 최근의 당 사태를 "쌍방 과실"로 진단했다. 그 말대로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중요 당직자로부터 "쌍방 과실"론이 나올 상황이라면 타협안도 통할만 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종북'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고 고집스럽게 이의를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기에 국가보안법이 여하튼 엄연히 존재하고 고도로 발달한 정보·수사기관이 있다. 여하간 그 정보·수사기관이 문제 삼는다면 혹 몰라도 그들이 아닌 당원들 서로 간에 '종북' 시비로 분열된다는 것은 좀 어색한 게 아닌가. 문제가 있다면 그 정보·수사기관에 맡기고, 그 귀추를 지켜보자.

진보정당을 말할 때 가끔 생각나서 인용하는 교훈적 일화가 있다. 자유당 정권이 '4사5입 3선 개헌'을 강행한 후 진보당이 태동될 때의 이야기다.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소해 장건상 씨가 죽산 조봉암 씨에게 새 진보정당을 만듦에 있어서 다른 세력은 배제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 만으로 하자고 내세웠다. 그때 죽산은 "우리가 학술단체를 만들려는 게 아니고 정당을 만들려는데, 이것저것 가려서 하지 말고 모두를 정당이라는 용광로에 집어넣어 정당 활동(투쟁)을 통해서 모두가 융합되게 합시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죽산을 생시에 알았다고 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구서에 나와 있는 이야기다. 진보당 창당에 있어 공산 전력자만 제외했었다. 죽산의 정당관이 맞다고 본다. 요즘 진보진영에서도 '화학적 결합'이란 말을 쓰고 있다.

정당이란 어차피 일종의 연합체다. 보수정당은 이해관계가, 진보정당은 정책노선이 주로 중심축이 되어 연합한다. 연합이 느슨할 수도 있고 바짝 조여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은 그 연합의 원리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보기로는 현실 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놓고 다듬다 보면 서로 간에 차이가 별로 없을 것도 같은데, 미리부터 패거리를 위한 패거리를 가르는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정책을 다루다 보면 크게 보아 '손오공이 뛰어 보았자 부처님 손바닥 위' 같은 이야기다. 주어진 조건이 어렵고, 모두 지능은 높은 수준이어서 '부자 쪽을 얼마간 더 위하는가, 서민 측을 더 보살피는가'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제정 러시아 때 사회민주노동당에서 레닌이 주도하는 파가 열세이다가 한때 다수파가 된 적이 있다. 레닌파는 직업 혁명가들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이끌어 혁명을 하여야 한다는 급진파고, 반대파는 점진적 사회의 변환을 주장하는 온건파였다. 레닌파는 다수가 되었을 때 물실호기(勿失好機)라고 다수파를 뜻하는 볼셰비키를 자기들의 호칭으로 하여 상대를 소수파를 뜻하는 멘셰비키라고 부르며 핍박하였다. 소수파 멘셰비키는 떨어져 나왔으며 혁명 후에는 탄압을 받았다. 물론 러시아와 한국의 경우는 비교가 안 된다. 전혀 상황이 다르다. 한쪽이 혹시 멘셰비키처럼 될지 몰라도, 다른 쪽이 볼셰비키는 전혀 아니다. 될 수가 없다.

한국의 통합진보당에서는 '구당권파'가 볼셰비키 행세를 하며 '신당권파'를 멘셰비키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신당권파'가 스스로 당을 떠나서 새 당을 만들겠다니 외부인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신당권파'가 민주통합당과의 연합전선 형성 및 연합정권 구성을 위해 분당을 하려는 것도 같다. '구당권파'의 통합진보당은 국민들 사이에 이미지가 실추했고, 민주통합당 측에서도 연합을 꺼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선에 임하여 일단 연합전선의 형성 단계가 되면 범야 연합전선이 형성되어 단일후보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부각되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어느 당 어느 당이 연합에 참여했느냐는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후보 한 인물이 커다란 상징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대선의 열기란 그런 것이다. 또한, 그때쯤 가면 통합진보당의 상처 난 이미지도 어지간히 잊혀질 것이다.

연합전선의 후보는 범야 단일후보가 되었다는 그 명분으로 득표를 하게 된다. 후보와 민중이 직접 연결되는 직접성이다. 정권의 판세가 달라질 때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달라진다는 게 관찰자들의 이야기다. 정당들이란 마치 표의 도매상과 같이 표를 몰아주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후보와 대중의 직접성이 더 강하다. 그래서 후보가 그때부터 정당들의 장난꾼들을 캠프에서 제거할 수가 있다.

오늘날 같은 매스·미디어가 발전한 시대에는 연합전선이 형성되기만 해도 국민이 거의 모두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종북' 문제는 조만간 사그라질 것이다. '패권주의' 문제는 애초에 문제가 되기에 근거가 약한 것이었다. 정당이란 용광로에서 서로가 화학작용도 하여가며 현실문제의 해결에 노력하다 보면, 현실적 문제에 부닥쳐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에게 알리려 노력하다 보면, 모두 언제 그랬더냐는 듯 그동안의 논란점들이 스스로 해소될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헛소동>(원제 Much ado about nothing,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야단법석')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별스럽지 않은 일'로 바꿔야 알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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