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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충격, 국민은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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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충격, 국민은 목마르다

[남재희 칼럼] 안 교수, 대선 정국에 아주 좋은 충격

많은 사람들이 좋게 기억하고 있는 송건호라는 언론인이 있었다. 같이 일하면서 내가 좋아했던 선배였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나 행동이 한 발짝 뒤늦은 '형광등'이라 불릴 만했다. 박정희정권 중간 쯤에 행정구역 개편을 위해 충청북도를 이리저리 분해, 해체하는 일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때 충북 출신으로 아무 말이 없던 그는 그 다음 날에 와서야 "그것 생각해보니 괘씸한데…" 한다. 심사숙고 한 후의 발언이었을 것이다. 안철수 교수의 움직임에 대해 비교적 둔감했던 나는 그가 책을 내어 대단한 화제가 되고 난 후도 담담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형광등'처럼 시간이 걸리는 걸까.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지난 19일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데 이어, 23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SBS

우선 결함부터 먼저 보는 언론인 체질 때문인지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첫째, "정치 경험이 없는데 과연 대통령 역할을…"이라는 데 대해 "'낡은 체제'와 결별해야 하는 시대에 '나쁜 경험'이 적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 아닌가"라고 말한 점이다. 글쎄, 우리의 정치 현실을 혐오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다. "턱도 없이 거창한 구호에만 집착하면서 염치 없는 저급 정치에만 골몰"한다는 것이 수준 높은 지성인의 글에도 나온다.

그러나 해방 후 60년 이상 이어져 온 우리 정치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말이 아닐까. 우울한 이야기지만 정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대개가 그런 것이다. 선진국 미국도 정치가 부유층의 정치자금에 얽매어 있고, 빈부 격차가 심화하여 '계급 전쟁' 운운하고 있지 않는가. 영국도 머독의 언론재벌에 집권 보수당이 얼마간 휘둘리기도 하고.

선악이 뒤섞여 있고, "진흙탕 속에서 연꽃을 피운다"고 말하지 않는가. 안 교수의 그러한 사고는 현실 정치 참여 시 자칫 큰 과오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도덕적 결벽주의는 정치와 잘 맞지를 않는다. 역사에 그런 사례가 있다. 그리고 머리 좋은 것은 체험과는 다르다.

"합리주의의 오만한 자기주장보다는 현실에 산재하는 무수한 모순의 수용이 갖는 진실을 더욱 사랑하고 있다."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고명한 정치이론가 이사야·벌린에 관한 압축된 평을 최근에 읽고 공감하였다.

또한, 그는 대선 행보의 동기로 지난 4.11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것을 들었다.

야당이 이길 경우, "정치권에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울림통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이었다 한다. 그러나 야당이 '패배'하면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다.

설명치고는 궁색하다. 지난 총선이 야당의 '패배'라고 보는데 우선 의견을 달리한다. 간단히 말하여 비긴 것이다. 그리고 여하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총선 결과를 갖고 자기 결심의 갈림길로 내세우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구차한 변명만 같다. 정치적 의욕이 있었는데 타이밍(timing)을 조절했다는 것이 실상일 것이다.

그러한 점들은 접어두자. 안철수 교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비위를 거스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흠결 지적은 큰 흐름으로 볼 때는 지엽적인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안철수 충격은 좋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 파장은 더욱 확산되어 우리 정치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 될 것이다.

우선 박근혜 씨 쪽에 일대 경종을 울렸다. 선거 캠프 쪽 사람들은 짐짓 시치미를 떼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동안 '박'비어천가가 넘쳐났다. 너무 아부성을 드러내어 역효과가 날 것도 많았다.

비교적 공정하다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까지도 최근 박근혜 씨 출마 선언을 보도하면서 그가 당선되는 것이 확실하다는 느낌을 주는 식의 보도를 했다. 답지 않은 아부성인 서술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라도 다수의 국민들은 박근혜 씨 쪽의 승산이 클 것으로 생각했다. 언론들의 경마식 보도에도 항상 선두 주자는 그였다.

그런데 '아차! 이번에 그게 아니구나' 하고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아마 그들의 선거 전략이나 정책 제시를 근본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몽준, 이재오 등 당내 경합자·세력을 오만하게 깔아뭉개고 일인체제로 독주하는 일도 그렇다.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적인 일인체제임은 분명하다. 벌써부터 그럴진대 혹시 앞으로는 어떻겠는가. 그리고 특히 어물쩍하게 넘어가려던 재벌 개혁 문제도 손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점쳐진다. 재벌 온존이 아닌 개혁 말이다. 공룡을 겨누었다가 도마뱀 격이 아닌가.

야권의 후보들 가운데는 아예 출발 때부터 안철수 연합론을 내세워 민주통합당이 불임 정당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정치 발언 시간표상의 실수를 한 사람이 있지만, 여하간 안철수 연합론은 민주당 측의 기본 방침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 선거 때처럼 안 교수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주느냐(개연성이 매우 낮다), 어떤 방식이든 민주당 내의 경선을 거쳐 안 교수가 지명되느냐(가장 있을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럴 때 작은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안 교수가 독자 출마하고 민주당이 지지해주느냐(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 큰 개혁이 있을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다.

그런 것들이 앞으로 관찰해 볼 각 캠프의 전략의 묘미이고, 대선 관전의 스릴일 것이다. 거기서 어느 쪽이 옳다고, 성급하게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

한 가지 더, 언론에 보니 아이젠하워 방식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의 명성으로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징발(draft)되어 성공하였다. 연합국의 유럽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그의 경력의 폭과 두께를 작게 보면 안 된다. 한 나라의 대통령보다도 병력, 군비, 예산, 정보, 전술, 전략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월등했다. 방대하고도 치열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세계를 움직인 자리였다. 그런 아이젠하워를 비교·거론하다니….

안 교수로 하여 여하튼 대선의 양상은 한층 긴장을 더하게 되었고, 정말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역시 한국 정치는 역동적이다. 그만큼 현재대로의 박근혜 대세론만으로는 국민들의 성이 차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무언가 한 발짝 역사의 진전을 바라고 있는 것이 국민의 심정이고, 거창하게는 시대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기득권 세력의 온존. 국민은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목마르다. 갈증을 느낀다.

세계가 자랑하는 <이코노미스트>도 얼마간 성급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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