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리플 엑스>는 미국 판 쿠데타를 다룬 작품입니다. “군축”을 시도하려는 대통령에 대한 국방장관의 음모가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태를 그린 내용으로, 특히 “반전 애국주의”라는 새로운 주제가 담겨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9.11 이후 미국의 “애국주의”라면 전쟁지지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전(反戰)을 지향하는 대통령의 설정은 현 부시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부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미국을 우파적으로 끌고 가려는 국방장관은 마치 럼스펠드 현 국방장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느 농장지대 지하에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의 비밀 정보기관이 정체 모를 요원에 의해 공격받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평화로운 농장지대가 사실은 철옹성과 같은 지하비밀기관의 요새라는 점도 눈길을 끌거니와, 이 기관을 습격하는 방식도 지하 벙커스터 폭파장치를 닮아 미국의 새로운 군사기술의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새로운 군축 제안을 통해 국방예산의 감축을 하려는 대통령에 대하여 불만을 품은 장성 출신의 국방장관이 특수요원을 동원하여 꾸민 작전이었습니다. 미국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대통령의 군축 의지를 좌절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하는 대통령을 겨냥하여 저격음모를 계획하고, 대통령 경호를 내세워 군부대 일부를 동원하는 등 치밀한 쿠데타 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의 모든 책임을, 대통령의 직속 비밀정보기관의 책임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결국 이 모든 음모는 밝혀지고 상황은 반전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태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 가장 결정적인 일조를 하게 되는 것은 흑인 주인공입니다. 그에 대한 묘사와 관련해서 인종주의적 편견이 깔려 있는 장면이 없지 않지만 백인 우파가 전쟁으로 끌고 가는 미국에 제동을 거는 대목은 전체 영화의 주제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보이고 있는 일방주의적 행태는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도 없는 “21세기형 제국주의 지배전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민족국가 단위의 주권에 대한 존중도 없고, 외교행위는 군사적 선택으로 가기 위한 요식절차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형편에, 영화 <트리플 엑스>가 군축을 도모하려는 미국 대통령을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로 내세우고, 그를 제거하려는 국방장관을 악당으로 표현한 것은 지금까지의 미국의 세계전략상의 기본구도와는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의 미국 대통령은 외교적 수단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 적이라도 자신의 우방이 될 수 있는 설득의 과정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발언을 의회의 국정연설에서 매우 밝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합니다.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려는 의지를 끊임없이 선포하고 있는 현 부시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미국 지도자의 이미지를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됩니다.
북한의 핵무장 체제에 대한 미국의 기습공격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면서, 동북아시아 정세가 긴급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인상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이러한 선제공격이 충분한 이유와 정당성이 있다는 식의 논리가 이러한 과정에서 굳어지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역사 속에서 통킹만 사건은 깊이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함대가 월맹의 공격을 받았다는 식으로 전쟁의 본격적 확전을 시도한 미국의 주장은 훗날 조작과 거짓이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조작의 결과는 무수한 인명의 희생과 베트남의 처절한 파괴였습니다.
외교적 대화 창구가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대정책을 유지하면서 위기상황을 긴박하게 조성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은 우려할 만합니다. 북한의 경우에도 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확고한 의지를 표방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실로, 반전 애국주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건 미지수가 세 개 있는 트리플 엑스가 아니라, 잘만 눈을 뜨면 확고한 답이 보이는 문제입니다. 아, 혹 부시 대통령은 평화를 원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자꾸 압력을 넣어서 이렇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럼 아무개 혹은 누구인지 모르는 또 다른 트리플 엑스? 부질없는 상상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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