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에서 ①②번은 진보적이고 ③④번은 보수적 대답으로 설정했다. 진보 보수 두 가지 답안만을 내도되지만 네 가지 중에서 고르도록 한 것은 진보 보수의 정도까지 측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값을 모두 더한 뒤에 문제 출제자의 지시에 따라 일정값으로 나누면 자신의 이념 수치가 도출된다.
이외에도 국가보안법 개정, 북한 인권 문제, 한·미 FTA, 복지를 위한 증세, 대기업 출자총액, 고교 평준화, 양심적 병역 거부, 사형제도 폐지 등 우리사회의 현안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설문 결과가 어떻게 나왔으며 어떤 추세를 보이고 있는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필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위 설문을 가능하게 한 전제와 결론의 인과관계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각각의 사안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한다. 즉 어떤 문제에는 진보적인 반면 또 다른 문제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갖는다. 이때 진보적 입장의 숫자와 보수적 입장의 숫자를 모으고 그 양적 크기를 재료로 해서 설문응답자가 진보 중도 보수 중 어느 쪽인지를 수치로 환산해서 보여준다.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서 다른 의견을 갖으며 그에 따라서 좌우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설명해보자.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4월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좌파적 견해를 0, 우파적 견해를 1로 본다면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 001010, 혹은 110101식의 의견을 갖게 되어 있다. 게 중에는 드물게 000000, 혹은 11111도 있을 것이다.(이들을 이른바 꼴통이라고 부른다)"
민주당 좌클릭 논란에 대한 김대호의 의견 중에 한 문단을 따온 것인데 이 글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디지털은 "0"(온)과 "1"(오프)의 조합으로 모든 것을 표시한다. 0과 1의 조합으로 무한히 다양한 숫자를 만들어, 문자, 음성, 그림을 표시하고 전송한다."
디지털의 세계에서처럼 어떤 사람이 좌파인가 우파인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좌파적 견해(0)가 몇 개이고 우파적 견해(1)가 몇 개인가를 보고 그것을 세어보면 된다는 관점을 던져주고 있다. 중앙일보 설문조사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좌를 여섯개 우를 네개 선택했다면 중도좌파가 된다. 이처럼 당연해 보이는 진술이 지금 커다란 도전에 봉착해 있다.
올해 대통령선거 후보 지지율에서 박근혜와 막상막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안철수의 발언 때문이다. 외모나 생각이 온건해 보이는 안철수가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청춘콘서트에서의 발언을 들어보자.
"평범한 사람들을 놓고 봤을 때, 보수와 진보를 도대체 구분할 수 있는가? 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문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교육문제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북한 문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할 텐데, 구분이 어렵다."
나아가 진보 보수를 구분하려는 사람을 벌레에 비유했다.
"보수와 진보로 자꾸 나누는 이유가 뭘까. 비유를 들어 보겠다. 평온한 평지에 어느 날 벽을 만들어서 그늘과 습지를 조성하면 거기에는 벌레들이 많이 살게 된다. 벽을 없애자고 할 때 그것을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벌레들이다. 멀쩡한 사람들을 억지로 나누는 사람들은 담 밑에서 자기 나름의 이익을 얻기 위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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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취지의 발언이 지난해 9월 방송된 <MBC 시사매거진> 화면에서도 발견된다. 이 문제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확고한지 알 수 있다. 그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의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교육문제는 진보, 가족문제는 보수라고 엇갈린 선택을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안철수는 사람들이 엇갈린 선택을 하므로 진보 보수 "구분이 어렵다"고 단언하고 그런 구분을 하려는 사람은 "바로 벌레들이다"라고 극언한다.
안철수의 발언과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와 비교해보자. 전제는 같은데 결론이 정반대이다. 중앙일보 설문조사와 김대호의 의견 그리고 안철수는 모두 사안에 따라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 직후부터 행로가 갈라진다. 중앙일보와 김대호는 진보의 값과 보수의 값을 더해서 어느 쪽이 더 많은가를 보면 어떤 사람이 진보인가 보수인가를 판별할 수 있다고 본다. 전제와 결론 두 가지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보 보수 구분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똑같은 사실을 보면서 한쪽은 진보 보수의 구분의 근거로 보고 있고, 다른 쪽은 진보 보수의 구분이 불가하다는 근거로 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 발설한 지 여러 달이 지났는데도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말실수이거나 일시적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 그의 신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4월3일 전남대 특강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진보·보수 이념에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데 이념은 필요치 않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진보 보수 구분이 어렵고 그런 구분을 하려는 사람은 벌레라는 안철수의 발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주장한 대로 진보 보수 구분이 성립하려면 자신이 진보라고 믿는 사람은 올곧게 진보만을 선택해야 하고 보수는 보수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극좌거나 극우가 아닌가. 김대호의 말로는 "이른바 꼴통"이다.
그는 왜 이런 엉뚱한 말을 한 것일까.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 발언의 함의를 곱씹어 보았다.
여기서 사족을 한마디 붙인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안철수 발언의 모호함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놓은 글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동시에 물러설 수 없는 논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의 의견이 옳은 것이라면 '좌우간에'라는 타이틀을 걸고 좌파 우파를 구분해서 연구하는 일이 쓸데없는 짓이며 심지어 필자가 벌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과대학을 나와서 IT 업계에서 일을 했다. 이과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추론을 하게 된다. 진보 보수라는 이념의 세계는 사회과학 학계에서도 정리가 잘 안 돼 있는 분야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엉뚱한 발언을 한 것이 아닐까.
그가 카이스트 교수시절 새벽 시간까지 연구실에 있다가 숙소에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인적이 없는 도로의 건널목에 홀로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처럼 늘 반듯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그의 눈에는 이렇게 비춰진 것이 아닐까. 진보면 진보이고 보수면 보수여야지 왜 어떤 일엔 진보이고 다른 일엔 보수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관된 대답이 가능한 자연과학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혼돈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판단만으로 결론을 낸다면 상황을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그의 인식이 설사 오류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라도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다. 그의 생각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기존 정치권에 냉소적이거나 불신감을 갖고 있으며 진보 보수로 패를 지어 싸우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이념문제라면 손사래를 치며 지긋지긋해 하는 사람들, 그들의 생각이 맞고 틀리고는 두 번째 문제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안철수의 발언이 힘이 센 것은 그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자. 안철수는 사람들이 진보 보수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진보 보수 구분이 어렵다고 했다. 필자는 이 발언의 전제와 결론이 즉 전자와 후자가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입증하려고 했다. 여기서 자기 발등을 찍는 말이지만 부득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논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의 발언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자가 근거로서 효력이 없다고 해서 후자도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이지 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참모들이 다른 적당한 근거를 찾아서 바꿔주면 해결될 문제다. 지금 우리는 학문적 논리적 정합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의 발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는 일이 일차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그 결론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분명한 근거가 있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갔으며 그래서 진보 보수 구분하는 것도 부질없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국내외 학계에서 제기돼왔다.
안철수에게 개인교습을 했다고 알려진 김호기 교수와 김근식 교수도 그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호기는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서구에서는 "보수·진보의 커다란 정책의 차이가 없"다면서 "전세계가 탈 이념시대로 나아가는데 정작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치열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근식도 "안철수에 대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제 시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사르트르가 좌파 우파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그의 명저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그런 견해를 피력했다. 김호기는 위의 인터뷰에서 다니엘 벨의 수렴이론을 소개했다. 좌파는 중도좌파를 거쳐 우파는 중도우파를 거쳐 점차 가운데로 수렴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좌파 우파의 특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우파적 시각에서 좌파의 시대는 갔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사용한 수사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안철수의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각도에서 조명해봤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그의 발언이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호기의 지적처럼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지 않은가.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색깔논쟁이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념 갈등을 논의하기 위한 도구인 진보 보수 구분을 부정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안철수 자신은 정치적인 발언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무당파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이념에 대한 혐오감도 상식 수준을 넘어섰다. 이념에 따른 구분을 하려는 사람들을 그는 "벌레"라거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하했다. 그러나 그렇게 혐오한다고 해서 이념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념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어찌됐든 안철수의 "벌레"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진보 보수 규정이 심각한 혼돈상태에 놓여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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