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문명간 대화' 계기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문명간 대화' 계기될까

서명준의 '베를린통신' <6>

지난 주 막을 내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은 아랍세계였다. 이는 테러리즘과 아랍권이 동일시되는 시기에 매우 용기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전체 '아랍세계'를 초대한 이번 도서전은 아랍국가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아랍국가들은 대서양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각 국민들은 고유의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하나의 아랍세계'는 사실상 실체가 없는 것이다.

도서전에 초대된 22개 아랍권 국가의 총 인구는 약 3억명에 달한다. 또 아랍권 국가들의 정체(政體)는 상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고 국가별 형성 시기도 다르다. 무엇보다 아랍권의 국민국가는 지난 20세기 유럽 식민주의에 대한 투쟁을 거치면서 각기 다르게 형성되었다고 한 아랍전문가의 말을 인용, 일간 타게스 슈피겔(DER TAGESPIEGEL, 10월 6일자)은 보도했다.

또 아랍국가를 하나로 묶으려는 정치적 시도는 모두 실패한 바 있다. 예컨대, 지난 195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과 1969년 역시 쿠데타로 집권한 가다피 리비아 대통령이 각각 아랍세계의 정치적 통일을 노렸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아랍국가는 없다.

이렇듯 아랍권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민주주의의 결핍이 지적되고 있지만 사실 이들 국가들은 지난 9-11세기에 걸쳐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 서구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폐허가 된 바그다드는 그리스와 인도 그리고 중국의 정신적ㆍ물적 교류가 활발했던 이른바 세계도시였다. 이 밖에도 아랍권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아랍 지식인의 언어인 코란어는 인본주의 문화의 전달매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은 이슬람이다.

지난 10월 6일부터 닷새간에 걸쳐 진행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www.buchmesse.de)에는 아랍권 문학예술계의 엘리트들이 초대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아랍 표준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로 특히 이집트 출신 작가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는 도서전의 아랍권 조정관인 모하메드 고아넴이 이집트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독일 주간 디 차이트(DIE ZEIT, 9월 16일자)에 따르면, 이번 도서전 주최측은 아랍권 작가들을 직접 선별하지 않고 각국 정부에 작가 선별을 위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또 아랍권 국가들의 작가협회가 대부분 국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작품활동이 제한되고 있다면서 유일하게 모로코 작가협회만이 정부의 압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모로코 작가협회도 자국 정당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도서전에 추천된 아랍 출신 작가들은 대부분 각국 정권에 비판적이지 않은 이들로 구성되었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 냉전 시대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옛 동독작가들을 초청했을 때에도 이른바 '국가인정 공식 작가'들이 초대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랍세계가 주빈국인 이번 도서전에 불참한 아랍국가도 있다. 쿠웨이트와 리비아는 재정상의 이유로, 모로코와 알제리는 독자적인 참가를 이유로 불참사유를 밝혔다. 특히 도서전 주최측이 철학자 모하메드 아베드 자브리, 역사가 압달라 라루이, 단편작가 타이브 사디키 등 주요 모로코 출신 작가들을 배제했다고 주간 디 차이트는 모로코 일간 알-알람(Al-Alam, 7월 24일자)을 인용, 보도했다. 이는 이집트 출신 조정관의 문화권력 행사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이밖에 이번 도서전에 불참한 이라크는 미 부시 행정부의 침공 이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03년 모로코 작가협회는 '아랍소설의 현재'라는 주제의 포럼을 주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모로코 외무장관이 런던에서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회동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집트 출신 작가들은 행사에 불참했다. 이는 아랍국가간의 미묘한 정치적 긴장관계를 말해준다. 당시 포럼은 독자가 대폭 감소하여 불황을 겪는 아랍출판시장의 현황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일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 10월 6일자)에 따르면, 아랍권의 베스트셀러 판매부수는 5천부를 넘지 않는다. 또 아랍권 국가의 출판사들은 대부분 국영출판사다. 게다가 약 12만5천권에 달하는 아랍문학작품 중 5백여권만이 독일 출판계에 소개되었고 이들 아랍출신 작가들 중 상당수가 독일에 살면서 독일어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10월 6일자)이 한 출판분야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무엇보다 이번 도서전은 단일한 아랍문학이 존재하는지 또 아랍국가만큼이나 다양한 문학이 존재하는지 등 아랍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특히 문학이 무엇보다 언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불어, 독어 등 유럽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아랍출신 작가들의 위상을 재고해야 한다는 비평계의 지적이다. 현재 이들 작가들은 아랍과 서구사회의 교량 역할이라는 명예와 서구사회의 선전도구라는 불명예를 동시에 얻고 있다.

현대사에서 아랍인들의 자리는 테러리즘이 대신하고 있다. 특히 이-팔 분쟁, 걸프전, 그리고 이라크전 등 아랍의 이미지는 완전히 손상됐다. 바로 걸프만 봉건국가의 석유가 오히려 문화와 비판적 사유를 저해하는 독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모로코 출신 작가 타하르는 주간 디 차이트(DIE ZEIT, 9월 16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정치가 문화를 감염시켰으며 아랍권에서 문화는 정치권력의 소유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력이 문화에 돈을 대면 문화는 권력을 위해 노래하고 이렇게 성장한 작가들이 프랑크푸르트에 추천된다는 비판이다.

이는 또 아랍문학이 주로 정치적 테마를 다루는 까닭이기도 하다. 아랍작가들은 정치문제로부터 벗어난 사유를 할 여유가 없다. 문화가 정치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랍작가들은 대부분 사회운동과 깊숙히 연관되어있다. 그러나 유럽의 아랍 문학 독자들은 이러한 아랍작가들의 '비애'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다. 아랍문학 팬들에게 아랍출신 작가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면서 변호사이고 사회운동가인 동시에 영웅이고 또 순교자여야 한다.

지난 1988년 작가 나지브 마푸스(Nagib Mahfus)가 아랍권 출신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아랍 언론은 다소 냉소적인 논평을 낸 바 있다. 스웨덴 한림원이 뒤늦게서야 수상의 불균형을 극복하려 한다는 비판이었다. 또 당시 노벨문학상은 전체 '아랍세계'에 바쳐진 것이었다. 이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아랍문학의 구도를 단순히 '아랍세계' 문학으로 획일화했다는 점에서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한계와 닮아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올 해 92세의 이집트 작가 나지브 마푸스는 개막식 축전에서 "서구사회의 안보가 위협받고나서야 아랍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비판한 것으로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Sueddeutsche Zeitung, 10월 6일자)은 보도했다. 아울러 슈뢰더 독일총리는 도서전 개막식 연설에서 "일련의 테러참사 이후 서구사회에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점증하고 있으나 이를 두고 문명충돌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문명간 대테러 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으로 신문은 보도했다. 슈뢰더 총리는 또 동방의 이미지가 편견과 획일화로 점철되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바티야 구르 이스라엘 작가는 시사주간 슈피겔(DER SPIEGEL Special, 9월 28일자)에 기고한 글에서 "획일화는 증오의 어머니이며 다양성이야말로 평화의 어머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오리엔탈 문명의 다양성과 깊이를 탐색하고 이해하는 작업이 문명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첩경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는 아랍인 작가와 독일, 프랑스, 영국에 거주하는 아랍출신 작가, 그리고 망명문학가 외에도 무슬림과 기독교인, 유대인 등 세계 각 국에서 1천여명의 작가들이 초대되었다. 도서전에는 또 111개국의 6,691개 출판업체가 참여하여 약 35만권의 서적을 선보였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는 아랍인을 초청했으나 이는 어쩌면 아랍인들간의 갈등을 야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는 베일에 가려진 아랍문학의 다양성을 알리는 유일한 기회였다. 무엇보다 이번 도서전을 계기로 향후 이른바 '동방과 서구의 대화'라는 거대한 사회적 프로젝트가 더욱 탄력을 받아 문화적 상호이해의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위해서 그리스 철학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중세유럽과 르네상스를 새로 발견하고자 한다면 아랍어를 비롯해 아랍 철학과 신화를 연구해야 하며 단테나 스콜라 학파 같은 아랍철학을 추종한 바 있는 서구인들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감안하면, 니체의 논리는 어쩌면 동방과 서구의 연결고리를 탐색하는 작업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