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은 미국에의 도전'.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가 27일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6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평양특사로 파견하기로 발표한 배경에는 북일정상회담 이후 아시아 지역 미국의 최대 맹방인 일본 총리의 대북대화 제안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미국의 기본 입장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소극적이지만 예상치 않은 북일정상회담 등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미국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커밍스 교수는 아사히신문 기고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은 위험한 선제공격으로 대표되는 부시 독트린과 반세기에 걸친 미일간의 긴밀한 정책조정으로부터의 극적인 이탈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커밍스 교수는 또 고이즈미 총리의 대북화해 노력은 일본 내 납치자 문제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어려운 역할을 떠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며 미일관계 등 여러 부담요인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한 고이즈미 총리의 결단은 상당히 의미있는 족적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다음은 커밍스 교수가 기고한 아사히신문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은 미국에의 도전**
고이즈미 총리는 위험한 선제공격으로 대표되는 부시 독트린과 반세기에 걸친 미일간의 긴밀한 외교정책조정으로부터 극적으로 이탈한 것이 분명하다.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북일정상회담은 미일관계와 북한의 개혁프로그램,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에 있어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정상에 의해 약속된 10월의 북일관계 정상화 교섭이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북일간 정상화교섭이 별 다른 문제없이 진척된다면 고이즈미 총리의 용기있는 9월 방북은 동북아시아 평화 정착에 있어 역사적인 이정표로 자리잡을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기간 중 폭로된 북한의 잔인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일본 국내정치가 고이즈미 총리의 계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실을 인정한 것은 그동안 보여준 북한의 행동에 비추어볼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북한은 50년이 넘도록 그들이 절대 옳으며 나머지 세계는 잘못됐다는 선전을 계속해왔다.
북한 정권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북한은 주체사상을 통한 국가의 존엄을 가장 우선시하는 나라다. 그같은 나라의 지도자가 과거의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나라 전체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결과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내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가 과거를 인정하며 직접 사과를 했다는 사실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은 식민지배와 전쟁기간 중 잘못에 대한 일본의 사과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김정일이 납치자 문제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이 이제서야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최근 북한의 많은 변화들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즉 오래 지속될 것임을 예상케 한다. 북한의 변화에는 유럽연합과 영연방 국가들과의 관계개선, 한국과의 철도연결, 극적인 화폐 평가절하 등이 포함된다.
고이즈미의 성공은 또한 위기상황에 처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도 큰 지원을 했다. 몇달 전만 해도 햇볕정책은 이미 끝난 것으로 보였으며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이 정책을 버릴 것이라고 여겨졌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 대통령의 평판은 아들과 측근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그의 인기와 함께 곤두박질쳤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공공연히 비난했으며 평양은 서울과의 협상을 거절했다.
하지만 지난 4월 김 대통령의 대북문제 핵심보좌관인 임동원(林東源) 특보가 평양을 방문하고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임 특사는 "9.11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이 미국의 군사작전 목표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이 메시지는 지난 주 워싱턴에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선제공격 독트린으로 공식 발표됐다).
임 특사의 방북 이후 북한은 한국과의 실질적인 대화 테이블로 복귀했다. 지난 여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북간 철도 재연결사업을 완성시키는 동의하라고 촉구했다. 이후 고이즈미의 방북은 지난 6개월간 워싱턴을 제외하곤 모든 트랙에서 대북포용정책을 원위치시키는 외교정책의 분수령으로 정점을 장식했다.
오직 부시 행정부만이 이같은 최근의 성공들이 문제를 만든다고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정권과 외교를 통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이즈미의 방북이 미국 보수파를 대표하는 제시 헬름스의 제자 존 볼튼 국무차관이 불과 며칠 전 서울에서 북한을 다시 '악'의 국가라고 비난하는 발언을 한 후 이뤄졌다는 것은 매우 놀랄 한 일이다.
일본과의 불협화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미국 외교관들은 워싱턴이 북일정상회담에 동의한 듯 보였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위험한 선제공격으로 대표되는 부시 독트린과 반세기에 걸친 미일간의 긴밀한 외교정책조정으로부터 극적으로 이탈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고이즈미는 워싱턴에 대한 도전을 통해 지난 20개월간 유지돼온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포기하도록 유도했으며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는 어려운 일에 숨을 불어넣는 임무를 떠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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