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씨가 기억하는 남편은 늘 새벽에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몸이 아픈 것조차 회사에 죄스럽다던 남편이었다. 이런 남편이 갑작스레 암에 걸렸다. 그리고 죽었다. 하지만 회사는 "자기가 좋아서 일하다 죽은 것을 왜 회사에 보상하라고 하느냐"라고 했다. 남편이 22년 세월을 고스란히 바친 대가였다. 결국 양 씨는 남편이 일하던 회사 본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결심했다.
"22년간 평균 퇴근 시간은 새벽 1시…늘 과로사 걱정"
▲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일인 시위 중인 양희영 씨 ⓒ프레시안(이진경) |
박 씨는 아예 끼니를 거를 때도 잦았다. 양 씨는 "남편이 하루 한 끼도 못 먹고 회의 준비한 적이 여러 번이라 말했다"고 했다. 양 씨는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과로사를 걱정하며 지냈다고 했다.
"어느 날 방송에 나온 '과로 체크'를 해봤어요. 10개가 넘으면 과로사 위험이 있다고 했죠. 남편의 생활을 체크해보니 16개가 해당되었어요. 하지만 '빨리 일을 하러 갈 수 있게 해가 일찍 떴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잠드는 사람이 제 남편이었습니다."
"위암이라는 전화를 받고도 자정까지 근무"
지난 8월, 박 씨는 갑작스레 배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았다. 제일 먼저 방문한 삼성전자 사내병원을 포함해 병원 세 곳이 모두 박 씨의 상태를 위염으로 판정했다. 박 씨는 계속해서 복통을 호소했으나 병원에 다니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회사에 출근했다.
"이렇게 아픈데 좀 쉬는 게 어떠냐고 하면 남편은 '회사에 가면 정신이 들어서 아파도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어떤 의사는 남편의 근무 시간을 듣고, '그렇게 일했는데 어떻게 아직 살아 있느냐'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9월 1일, 삼성의료원에서 조직검사 결과 암 조직이 발견되었다며 다음날 병원을 방문하라는 연락이 왔다. 박 씨는 자신이 며칠간 자리를 비우게 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날도 자정까지 남아 업무를 처리했다.
9월 2일, 삼성의료원에서는 박 씨의 상태를 위암 말기이며 암이 간에 90% 이상 전이가 된 상태라고 말했다. 병원 측에서는 박 씨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므로 입원도 하지 말고 남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라고 했다. 박 씨가 복통으로 사내병원을 찾아가 위염 판정을 받은 지 보름만이었다.
"'나아서 회사에 복귀하겠다'는 말이 유언이 돼"
박 씨는 나아서 회사에 복귀할 것이라며 회사에 병세를 알리기 꺼렸다. 병가기록도 남기기 싫다며 병가 대신 월차를 썼다. 박 씨는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족에게 유언 한마디 하지 않고 9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날, 남편은 7시간 동안 경련을 했습니다. 그 시간 내내 눈을 감지 못하다가 얼마나 눈이 아플까 싶어 눈을 감겨 주니 노란 눈물이 나왔습니다. 결국 죽는 순간까지 눈을 감지 못했어요."
박 씨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3주 만이자 월차도 다 쓰지 못한 채였다. 결국, 회사에 복귀하겠다는 말이 그의 유언이 된 셈이다. 박 씨는 매주 화요일 전화 영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투병 중에도 사망한 주를 제외하고 화요일 아침마다 영어 수업을 받았다.
"배가 너무 아파 잠도 못 자는 어느 날, 남편이 '가족도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버리고 일했는데 이게 뭐냐'라고 말하는데 제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삼성전자 "자기가 좋아서 일하다 죽은 것을 우리가 왜 보상하느냐"
박 씨가 사망한 뒤, 수원 삼성전자 인사부장은 유가족에게 "삼성 측에서 온 힘을 다해 도와줄 테니 장례 잘 치르고 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박 씨의 장례식이 진행되자 회사 측은 태도를 180도 바꿨다. 인사부장은 유가족에게 "자기가 좋아서 일하다 죽은 것을 왜 회사에 보상하라고 하느냐", "자기 건강, 자기가 지키지 못해서 죽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너무나 달라진 회사 측의 태도에 양 씨는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양 씨는 "'삼성은 사안별로, 유족 스타일별로 대응 매뉴얼이 있다'라는 말까지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군소리 없이 장례를 치렀으니 삼성 입장에서는 만만해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하기 위해 회사 측에 근퇴기록을 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러나 회사 측은 알아보겠다고 말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고인의 죽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만, 산업재해 인정 여부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왜 유가족에게 근퇴기록을 주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근로복지공단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제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좋은 선례'를 삼성에서 먼저 만들면 안 되는 것인가"
"남편이 아픈 배를 붙잡고 회사에 갔을 때도, 응급실에서 침대가 없어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누웠을 때도, 회사 측에서도 촉망받는 인재라고 하면서 과일바구니만 보냈을 때도, 단 한 번도 회사를 원망한 적 없습니다. 삼성은 남편이 늘 '내 청춘을 바친 곳'이라고 이야기했던 곳이거든요. 회사 측에서 '자기가 좋아서 일하다 죽은 것을 왜 회사에 보상하라고 하느냐'고 이야기하지만 않았어도 제가 거리로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양 씨는 비록 승소할 가능성이 작더라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소송도 불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 측에서는 모두 '선례' 이야기만 합니다. 선례가 없어서 산재로 인정해줄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좋은 선례'를 삼성에서 먼저 만들면 안 되는 것인가요?"
양 씨는 삼성본관 앞을 지나는 직원들을 향해 "삼성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이것은 당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소리쳤다. 양 씨는 "이제 삼성이 변해줬으면 좋겠다"라며 "광고로만 '가족'을 얘기하지 말고 진정한 자기 가족인 사원의 복지부터 신경 써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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