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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기가 제일 쉬워…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

[육아휴직 동행기 ②· 끝] 엄마 육아휴직

힘들겠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이는 한시도 엄마를 그냥 두지 않았다. 아이 울음소리에 취재 간 기자도 어쩔 줄 몰랐다. 얼마 전 종일 우체국 택배 기사 동행 취재를 했을 때도 몸은 힘들었을지언정 이렇게까지 '멘붕'이 오지는 않았다.

지난 12일 <프레시안> 기자인 나윤정(가명·32) 씨의 집을 방문했다. 나 씨는 육아휴직을 썼다. 그날따라 아이가 계속 운다고 했다. 무려 30시간 넘게 산통을 겪었다는 나 씨의 첫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애는 낳기까지가 제일 쉬워. 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

육아휴직 동행기
① 육아휴직 쓴 그 남자 "어머니껜 비밀이에요."

"애는 낳기까지가 제일 쉬워. 키우는 건 너무 힘들어."

나 씨는 직장 후배인 기자를 무척 반가워했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여가를 가질 만한 여유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어제는 애 낳고 처음으로 책이라는 걸 읽어봤다"며 "남편 옷이 다 해져서 사주고 싶은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아직 외출할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 나윤정 씨는 육아휴직을 쓰며 4개월 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취재를 간 12일, 나 씨는 "그 날따라 아이가 자주 운다"고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는 보통 새벽 6시에 아이가 깨면 젖을 먹인다. 아이가 엄마를 "발로 차고 막 운다"고 했다.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새벽 6시 반쯤에 동네 한 바퀴를 돈다. 그는 "남편이 일찍 들어오려고 노력하고 잘 도와주고, 대한민국 평균보다 훌륭한 남편인데도 힘들다"고 말했다. 남편이 출근하면 아이는 울고, 자고, 먹고, 싸고, 운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3일 밤낮으로 아이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부부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다.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았던 그는 결국 출퇴근 아이 돌보미를 불렀다. 산후조리원 비용이 2주에 200만~250만 원이나 해서 한 달간 돌보미 '이모님'을 부르고 160만 원을 냈다. 그래도 '이모님'이 가고 나면 '멘붕'이 왔다고 했다.

"간혹 엄마들이 가끔 '아이를 던져버리고 싶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너무하다 싶었는데, 낳아보니 그 심경이 조금은 이해돼요. 남편이 2, 3일만 늦게 오면 난 새벽부터 밤까지 종일 집에만 있거든요. 시내에 나가본 적도 없고, 평범한 삶이 그립죠.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싶고…"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을 물었더니 "맥주 한 캔만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는 술자리에 초대받았는데도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유축해 놓은 모유도 있고 남편도 다녀오라고 독려했지만, 나 씨 없는 집에서 우는 아이를 달랠 남편이 눈에 걸렸다.

"친정 엄마들은 무슨 죄야?"

나 씨는 출산휴가 3개월이 너무 짧다고 했다. 출산휴가만 쓰는 엄마들은 아이를 100일도 못 보고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데, 아이가 '완전 갓난아기'라는 것이다. 그는 "엄마들이 아이 낳고 바로 복귀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못 쓰게 하기 때문인데, 의무로 쉬게 하는 출산 휴가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나 씨는 "출산휴가가 너무 짧다. 의무적으로 쉬는 휴가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달력에 아이 백일 날짜가 적혀 있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육아휴직 1년을 신청한 나 씨도 요즘 고민이 많다. 아직 말도 못 하는 갓난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아이가 말도 못하잖아요." 선택은 셋 중 하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어린이집을 참고 보내거나, 친정어머니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나 씨도 임신하자마자 국공립 어린이집을 열 군데나 신청했다. 정원이 30명인데, 제일 빠른 대기번호가 110번이라 걱정이 태산이다. 다자녀, 맞벌이, 저소득층이면 대기번호가 올라가는데, 나 씨 부부는 합친 소득이 저소득층 기준인 연봉 5000만 원이 아주 약간 넘는다. 나 씨가 귀띔했다. "애매하게 벌면 (둘 중 하나가 직장을) 그만둬야 이익이 많대."

"아는 선배 아내가 아이 낳고 직장을 그만뒀는데, 따져보니 소득이 애매하게 걸친 사람들은 그만두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래요.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번호 받기도 좋고, 전셋값 빌리기에도 혜택이 많대요."

그는 "집에서 키우면 국가에서 20만 원을 주는데 어린이집에 보내면 40만~50만 원 비용을 준다"며 "전업주부들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신청하니 맞벌이 부부로서 조금 억울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쓰게 하기도 고민이다. "남자가 육아휴직 쓰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있고, 시댁에서 안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나 씨의 친정어머니는 몸이 안 좋으시다. 그가 산후 조리할 때도 며칠 봐주다가 면역체계에 이상이 오면서 병이 났다. 몸무게도 40kg이라고 했다. 시댁은 지방이라 멀다. 그는 "설사 친정 엄마가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친정 엄마에게 육아 노동을 전가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라며 "사회가 책임질 영역을 노인에게 맡기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애 보는 거 힘들어 죽어요. 친정 엄마가 애 보면 폭삭 늙는대. 엄마들은 무슨 죄야? 모처럼 자녀들 시집·장가 보내고 여생을 즐겨야 하는데, 말 못하는 손자·손녀가 온다고 해봐요. 초등학교 가도 돌봄이 필요한데, 친정 엄마가 애의 노예가 되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친정 엄마가 봐주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프레시안(최형락)

"암울한 현실 때문에 유연근무제 하고 싶어요"

일하는 엄마로서 나 씨는 요즘 심경이 복잡하다. 올케는 계약직이었는데 임신했다는 이유로 잘렸다고 했다. 출산 휴가 쓰기도 전에 회사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하고 계약 해지를 했다. "다행히도 올케는 전업주부가 적성에 맞는다고 해요. 전 아니거든요. 나가서 일하고 싶거든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도 데려올 시간이 문제다. 퇴근하면 아무리 빨라야 집에 오면 오후 8시인데, 어린이집에서는 늦어도 6시면 다 아이를 데려간다. 그래서 나 씨는 "노동계나 여성계는 유연근무제를 반대하지만, 나는 여력이 된다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임금 일자리로 여성을 부려 먹는 건 우려되지만, 유연근무제 자체를 반대하긴 현실이 너무 힘들잖아요. 여자는 애 낳으면 회사 나가라는 것밖에 안 되는데…."

아이를 낳은 뒤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아이가 생기면 업종을 바꾼다든지, 새로운 도전을 하기 힘들어진다"며 "공부를 새로 할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이 생기기도 쉽지 않고 자기 일을 할 여지가 적어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둘째는 낳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으려고 노력 중"

둘째를 낳고 싶었다는 그는 "요즘은 둘째는 절대 낳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참 조직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에 아이를 낳으니, 열심히 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답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지금쯤이면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고 덧붙였다.

"여기 아파트 할머니들 4, 5시 되면 놀이터에 집결해요. 유모차 하나씩 끌고 와. 다들 어린이집에서 애 데려오는 시간이거든요. 수많은 '친정 엄마 (혹은 시어머니)'들이죠. 그게 문제야. 육아 노동은 다 가정의 틀에 넣으려고 하잖아요."

▲ 나 씨가 우는 아이를 달래러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다. 뒤로 어린이집 차량이 보인다. 나 씨는 "아파트 할머니들이 어린이집에서 4, 5시면 유모차를 끌고 놀이터네 집결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래서 나 씨는 둘째를 낳을지 말지 아직도 '갈등 중'이다.

"일하고 싶고 아이 때문에 집에 있고 싶지는 않은데, 아이를 생각하면 혼자면 외로울 것 같아요. 둘째를 가지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는데 지금 생각에는 잃는 게 많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애는 보면 예쁘거든. 울고 힘든 건 기억 안 나. 아이 웃음에 힘든 건 다 잊게 돼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낳을 수 있을 텐데. 둘째까지 낳고 키우면 저도 40대거든요. 아이는 예쁘지만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암울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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