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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시간 투자하면, 우리 아이도 제2의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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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시간 투자하면, 우리 아이도 제2의 김연아?

[프레시안 books] 로버트 그린의 <마스터리의 법칙>

오래된 궁금증 하나.

천재 아이슈타인의 학창 시절 성적은 그저 평범했다고 한다. 김나지움의 교사들도 그를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은 훗날 아인슈타인이 세계적인 석학이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교사들은 눈앞의 상황을 애써 부정했으리라.

'내가 기억하는 아인슈타인이 아닐 거야. 그렇게 어눌한 녀석이 천재일 리는 없잖아.'

하지만 모든 교사들이 이런 식은 아니었을 게다.

'미안하다 아인슈타인.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생을 내가 몰라 봤었구나. 지금 모범생, 우등생이 아니라고 해서 훗날 크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어. 이제부터는 평범하거나 뒤처진 아이들도 잘 챙겨야지.'

이처럼 반성하는 교사들이 많다면, 아이들 입장에선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 다시 궁금증. 아인슈타인의 성적을 짜게 매겼던 교사는 이제 반성을 시작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반성해야 하지?

'당연한 거 아냐. 아인슈타인은 천재인데, 그걸 못 알아봤잖아.'

요컨대 천재성이란 보석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는데, 교사는 겉모습만 보고 속까지 진흙인 줄로 착각했다는 게다. 그렇다면, 교사가 할 일은 그저 진주의 겉에 묻은 흙을 닦아 내는 것뿐인 걸까. 그렇게만 하면, 천재성이라는 보석은 저절로 빛을 내는 걸까. 대개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천재성은 타고나는 거니까. 얼핏 생각하면 그럴 듯하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음치인데, 다른 어떤 사람은 원래부터 노래를 잘 불렀다. 또 어떤 아이는 공만 차면 헛발질인데, 다른 어떤 아이는 별 노력 없이도 공만 잡으면 펄펄 난다. 또 어떤 학생은 밤새워 공부해도 평균 점수를 못 넘기는데, 다른 어떤 학생은 놀 것 다 놀아도 늘 일등이다. 이런 걸 지켜보면, '타고난 천재성'을 부정하기 힘들다.

여기서 생각은 꼬리를 문다. 원래부터 노래를 잘하던 아이는 커서도 노래방에서 좌중을 휘어잡을 게다. 공을 잘 차던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만능 스포츠맨 소리를 들을 게다. 실컷 놀면서도 공부를 잘하던 아이 역시 평생 '똑똑하다' '머리 좋다'라는 말을 듣겠지.

새로운 궁금증이 드는 건 이 대목이다. A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노래방에서 펄펄 난다. 그러나 위대한 가수는 아니다. 그리고 여기, 위대한 가수 B가 있다. 어린 시절, A와 B 가운데 누가 더 노래를 잘 했을까?

비슷한 질문은 얼마든지 나온다. 머리 좋은 학생 A가 있다. 어른이 된 그는 좋은 학벌을 얻었고 뛰어난 지적 성취를 거뒀다. 그러나 위대한 석학은 아니다. 그리고 여기, 위대한 석학 B가 있다. 어린 시절, A와 B 가운데 누가 더 똑똑했을까?

▲ <마스터리의 법칙>(로버트 그린 지음, 이수경 옮김, 살림 펴냄). ⓒ살림
답을 고르기가 망설여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B가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가장 위대한 석학이 가장 똑똑한 학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A와 B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타고난 재능은 어쩌면 A와 B가 비슷했을지 모르는데, 아니 어쩌면 A가 더 뛰어났을 수도 있는데, 왜 A는 위대한 성취를 할 수 없었던 걸까.

이 말을 꼭 해야겠다. 사실, 글을 쓰는 기분이 몹시 민망하다. "가장 위대한 석학" 따위의 표현을 쓰다니, 내 손발이 오글거린다. 그러나 이번 책 소개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책 제목부터가 <마스터리의 법칙>이다. '마스터리'란 인간의 잠재 능력이 최대치까지 발휘된 상태를 가리키는데, 책 제목을 좀 쉬운 말로 바꾸면 '대가(大家)가 된 비결'쯤 될 것 같다.

이 책에는 음악가 모차르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생물학자 찰스 다윈 등이 등장한다. 학문과 예술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거장들이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냈는지를 다룬 책이다.

앞서의 예로 돌아가면, A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재능을 타고난 B가 어떻게 거장이 될 수 있었는지를 다룬 셈이다. <권력의 법칙>(로버트 그린·주스트 엘퍼스 지음, 이수경·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전쟁의 기술>(로버트 그린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등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 로버트 그린은 거장의 천재성은 대부분 과장된 신화라고 이야기한다. 타고난 재능을 무시하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열정, 그리고 끈질긴 시간 투자라는 주장이다.

모차르트를 가리켜 흔히 '음악의 신동'이라고 부른다. 다섯살에 이미 작곡을 시작했다는 신화도 따라다닌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신화가 대부분 허구라고 지적한다. 고전음악 전문가들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의미 있는 작품을 내게 된 건 작곡을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지나서였다.

여기서 저자가 꺼낸 이야기는 2만 시간의 법칙이다. 스웨덴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은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하면 탁월한 경지에 오른다"라는 주장을 했다.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인데, 저자의 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여러 거장들의 삶을 추적한 결과, 거의 모든 거장들이 본래의 열정 위에 1만~2만 시간의 수련을 쌓는 기간을 거쳤다는 게다.

▲ <아웃라이어>(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김영사 펴냄). ⓒ김영사
천재의 대명사로 통하는 아인슈타인 역시 대학 졸업 이후 직장 생활을 하며 1만 시간 이상을 연구에 쏟고나서부터야 천재성을 드러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인간의 뇌는 2만 시간의 집중적인 훈련을 거치면 놀라운 탈바꿈을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흡수하게 돼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이 남다른 창의성으로 이어진다.

반면, '나비의 애벌레' 시절과 같은 지루한 수련기를 생략한 사람은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프란시스 골턴이 대표적인 예다. 프란시스 골턴은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실제로 그는 엄청난 학습능력을 발휘해서 전공인 의학뿐 아니라 지리학, 인류학, 통계학 등 온갖 학문을 두루 섭렵한 걸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인류 지성의 역사에서 그의 이름에는 '우생학' 창시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원래부터 열등한 인종과 우월한 인종이 따로 있다는 주장이 우생학인데, 이는 20세기 역사에서 다양한 비극을 낳았다. 열등한 인종을 박멸한다는 명목으로 조직적인 낙태, 또는 학살이 저질러졌다. 그러나 굳이 천재적인 머리가 없더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생학'이 왜 허구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우생학' 주창자들이 열등한 인종이라고 부르던 이들이 인류 문명의 새벽을 열었다. 열등한 인종이라고 불리던 이들을 선진국과 똑같은 환경에서 교육시키면 역시 똑같은 성취를 거둔다. '천재'는 왜 이런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왜 '사이비 과학'에 낚였던 걸까.

'바보짓을 한 천재' 골턴과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사촌인 찰스 다윈이다. 다윈은 스스로 인정했다. 어린 시절, 자신은 평균지능에 못 미치는 아이였고, 추상적인 사고를 따라가지 못했으며, 이해력이 둔했다고. 하지만 지금, 아둔한 다윈의 이름을 똑똑한 골턴보다 아래에 놓는 사람은 없다. 다윈의 성공 비결 역시 '2만 시간의 법칙'이다. 비글호 항해 이후 다윈은 진화론 연구에 몰두했는데, (얼핏 보기엔 지식인 답지 않은) 단순반복 작업으로 몇 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지루한 시간의 축적이 있었기에 인류 지성사에 획을 긋는 성취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글의 도입부에 언급한 아인슈타인의 평범한 유년기를 '진흙으로 덮인 보석'으로 비유하는 게 좀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한 지능이라면 모를까, 인류 지성사에 획을 긋는 천재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거장의 평범한 유년기는 '진흙으로 덮인 보석'이 아니라 주변과 마찬가지의 '진흙'이었다. 다만, 거장의 열정과 긴 세월에 걸친 노력이 진흙을 보석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권력의 법칙>(로버트 그린·주스트 엘퍼스 지음, 이수경·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하지만 걱정도 좀 든다. 끈질긴 시간 투자를 강조하는 이런 주장이 한국의 교육환경에선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김연아 선수의 활약에 감동을 받은 학부모가 아이를 다그치면서 "눈 딱 감고 2만 시간만 투자해 봐. 너도 김연아처럼 될 수 있어"라고 한다면, 아마 열에 아홉은 재앙이 될 게다. '2만 시간의 법칙'으로 성공을 거둔 거장들은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무모한 시간 투자를 했다. 요컨대 그들은 타고난 재능의 천재가 아니라 열정의 천재들이었다.

저자 로버트 그린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 게 "인생의 과업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내 열정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무모하리만치 시간을 쏟이부어도 아깝지 않은 분야가 어디인지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기껏 "인생의 과업"을 찾아 냈는데, 그게 도무지 밥벌이가 안 되는 분야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회안전망이 아예 없다시피 한 한국에서, 돈 안 되는 분야에 2만 시간을 쏟아부은 '천재적인 바보'가 설 자리는 한뼘도 안 되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도 이런 걱정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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