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산화(散華)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산화(散華)

[한윤수의 '오랑캐꽃']<425>

통장에 돈이 1400만 원이나 들어있는데 못 찾는 답답이가 있다.
인도네시아 인으로 불법체류자다.

사연을 물어보았다.

"왜 못 찾아요?"
"카드를 잃어버렸어요."
"카드가 없으면 통장으로 빼면 되잖아?"
"통장으로 빼는 건 등록 안 했어요."


등록이 안 되어 있으면 ATM 기에서는 못 뽑는다.

"그럼 은행 창구에 가서 신분증 제시하고 직접 찾아."
"안 돼요."
"왜?"
"외국인 등록증 갖고 통장 만들었는데, 등록증이 반 쪼가리 밖에 없거든요."


ⓒ한윤수
무심코 세탁기를 돌렸단다.
바지 속에 외국인등록증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뒤.
빨래를 꺼내다가 경악했다.
반 쪼가리 외국인 등록증이 나왔으니까,
등록증은 다시 만들 수 없다.
불법 체류자니까.

다행히도 등록증 뒤대가리에는 그의 사진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앞대가리는 온 등록증을 위하여 세탁기와 싸우다가 장렬히 산화(散華)한 것 같다.

"여권은 있어?"
"예."

"어느 은행이지?"
"외환은행."
"어느 지점?"
"00지점"

이제 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00지점의 은행원이 등록증 뒤대가리가 그 자신이라고 믿어주는 수밖에 없다.

"가서 부딪쳐 보고, 안 되면 다시 와."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다행이다.

*후일담 : 다 저녁 때 전화가 왔다. "돈 찾아서 인도네시아로 송금했어요." 은행원이 믿어준 것이다.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홈페이지 바로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