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사이에 세 명의 사회복지사가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시달립니다. 보육교사도 한 명당 너무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인건비 착취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간병인들은 병원 배선실에서 서서 밥을 먹고, 탈의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쪽잠을 잡니다. 요양보호사들은 12시간 맞교대, 때로는 24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립니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은 과중한 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두라는 이용자의 말 한마디면 바로 실업자가 되는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인격적인 모욕감마저 느끼며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지원한다는 보람을 잃고 있습니다.
'사회 서비스 시장화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는 각 돌봄 노동자들이 이용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문제점들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에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 확대, 정부 책임 강화와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연속 기고를 4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돌봄노동 연속 기고 ①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학습지 시키는 지옥같은 현실" ② "사회복지사는 공무원이 아니라고 어떻게 설명할까요?" |
어르신.
며칠 전 병상에만 누워계시던 환자 어르신과 오랜만에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왔던 때가 생각납니다. 봄꽃이 만개한 병원 시계탑을 지나면서 어르신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오랫동안 아파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가족도 간병하기 힘든데 제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어 그나마 호전될 수 있었다고. "정말 내 가족보다 더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 하셨지요. 가족들에게 간병비 부담을 줘서 미안해 하시면서, "간병비 받으면 그래도 생활은 되겠네?" 하며 저한테 물으셨죠.
그러나 정작 밤낮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간병을 하고 받는 간병사의 임금이 고작 시급 2700원이란 저의 말에 어르신께서는 깜짝 놀라셨어요.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그건 바로 간병업체(유료 소개소)에서 소개비뿐만 아니라 월 회비 등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래서 실제 밥 한 끼 사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밥을 얼려와 배선실 한구석에 서서 밥을 먹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어르신께선 이 말을 들으시고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어요.
또 휴게공간이 따로 없어서 보호자나 문병객이 왔을 때, 혼자 한참 병실 복도를 서성거리다가 손님이 다 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병실로 들어오는 저를 보면서 어르신은 많이 미안해 하셨어요. 그리곤 "도대체 24시간 일을 하는데 사람이 최소한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은 병원에서 지어놔야 할 거 아니야? 탈의실도 없어서 화장실에서 눈치 봐가며 옷도 갈아입는다며? 간병사는 사람도 아닌가? 참나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하며 본인 일인 양 분노하셨어요. 저는 어르신의 그 말에 동감하면서 그런 어르신께 참 감사했습니다.
▲ 간병 노동자 ⓒ한국간병인협회 홈페이지 |
어제는 옆방에서 간병하던 간병사가 옴에 감염되어 일을 할 수 없고, 병원비도 간병사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 간병사는 가족에게 옴이 감염될까봐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고, 또 몸에 바르고 먹는 약이 독하여 피부에 이상이 생기고, 심지어 응급실에 실려 가기까지 했다는군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해서이기 때문이었죠. 병원에서 지시를 받고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하는 일들을 종용받고 있는데도 병원은 나 몰라라 하는 현실에 기가 막히고 우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르신.
저는 요즘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수술뿐만 아니라, 회복하기까지 간병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근래에 간병이 제도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올바른 간병서비스 제도가 정착되어 건강보험에서 간병비를 보장받아 어르신께서도 간병비 부담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맘 놓고 치료 받는 시기가 빨리 오길 바라봅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간병 제도화를 취지에 맞지 않게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비용 부담 완화와 보장성 강화, 질 좋은 서비스 제공, 열악한 환경에 있는 간병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제도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벗어나, 급성기 병원의 간병을 간호조무사만 하도록 하려는 움직임 또한 보이고 있지요.
간병사와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를 저한테서 많이 들으신 어르신께서는 "간병은 그동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간병사들이 해 왔기 때문에 간병사를 배제하고 간호조무사만 간병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하셨어요. 맞습니다. 지금 잘하고 있는 간병사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병원이 교육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요. 적어도 간병사들이 병원에서 일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이 오지 않길 바란다는 어르신의 말씀에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환자는 간병비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간병 받고, 간병사도 병원에 직접 고용되어 환자에게 더 좋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만 있다면 환자와 간병사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요. 빨리 그런 날이 오기만 바랄 뿐입니다.
항상 저를 걱정해주시는 어르신, 얼른 완쾌되어 즐거운 이별을 맞이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퇴원하셔도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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