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은 국위 선양의 근거다. 국위 선양 기준은 시대별로 천차만별이다. 병역 특례 제도는 1973년 도입됐다. 당시의 기준은 '해외에서 크게 국위 선양을 할 수 있는 자'였다. 최초의 병역 특례자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양정모였다. 올림픽 메달이 귀하던 시절, 1970년대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은 선수는 양정모가 유일했다.
1981년 국위 선양의 기준은 대폭 확대됐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3위 이내로 입상한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가 주어졌다. 수혜자가 많아지면서 국위 선양의 기준은 상향된다. 1985년 특례 기준은 '올림픽 3위 이내 입상자와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안게임 우승자'로 축소된다. 88서울올림픽 이후 한국 스포츠의 수준이 높아지자 국위 선양의 기준은 1990년부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으로 축소됐다.
특별한 국위 선양도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엔 특별법으로 병역 특례가 주어졌다. 이후 몇 차례의 논란을 겪으며 스포츠 선수의 국위 선양 기준은 현행 법규대로 '올림픽 3위 이내'와 '아시안게임 1위'로 합의됐다.
▲스포츠 선수 병역 특례는 언제나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2002년 6월 22일 열린 한일월드컵 8강 경기에서 스페인에 승리한 한국 축구 대표 선수들이 관중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당시 정부는 특별법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줬다. ⓒ연합뉴스 |
두고 볼 일이다. 국위 선양 콤플렉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또한 올림픽 메달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성취로 받아들여질 때, 병역 특례 제도가 과연 소멸될지 여부도 궁금하기만 하다. 스포츠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국위 선양 도구를 넘어, 우리 생활의 하나가 돼 자부할 수 있는 문화로 발전한다면 굳이 병역 특례는 필요 없을 듯하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 특례 제도가 자연스레 소멸되길 소망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감동은 콤플렉스의 응축이 아니라 우리 삶에 새로운 문화가 자리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2002년 월드컵을 보고 자란 젊은 세대는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과 세계를 향한 도전에 두려움이 없다. 우리도 스포츠에서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를 싹 틔운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닌 듯싶다. 아직 우리나라 선수들은 개인을 희생해 국가의 이름을 걸고 국제 대회 무대에 서는 데 일생을 바치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태릉선수촌은 그 상징물이다. 여전히 스포츠가 우리 삶의 중요한 문화로 발전하기까지 갈 길은 멀다. 병역 특례를 활용해서라도 감동과 자신감을 안겨줄 세계적인 선수를 좀 더 키워내야 한다. 아직은 개인의 성취와 국가적 자긍심을 엄밀히 구분할 역량이 우리 안에 갖춰져 있지 않다.
아쉬운 점은 병무청의 인식이다. '단 한 번의 입상으로'라는 표현은 과한 듯싶다. 스포츠는 언제나 단 한 번이다. 단 한 번을 위해 선수들은 땀과 눈물을 흘린다. 감동 역시 누적되지 않는다. 단 한 번, 찰나에서 느끼는 감동에 우리는 열광한다. 양학선의 런던올림픽 도마 금메달 연기는 불과 3초 남짓이었다. 3초를 위해 10년 가까이 준비한 선수의 성취를 '단 한 번의 입상으로'라고 표현한 것은 몰인식 아니면 폄하일 뿐이다.
병역 관리는 엄정해야 한다. 국민의 눈초리가 따갑다. 청문회 때마다 반복돼 온 고위 공직자의 병역 면제와 미필. 이 나라 고위 공직자 중엔 왜 이렇게 몸이 성치 않은 분들이 많은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면제는 온 국민이 지켜보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이뤄진다. 병역의 형평성과 정의로움을 위해선 고위 공직자와 그 자녀들의 병역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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