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매그나칩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김진기 씨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 청구 사건에 대해 지난 14일 대전지역 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가 심의한 결과 산재 인정 결정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
대전지역 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는 이날 중으로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결과를 통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지사는 판정위원회의 판단을 근거로 산재 승인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의 결정에 반하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고 말했다.
▲ 고 김진기 씨의 생전 모습. ⓒ임진숙 |
하루 8~12시간 주야간 반복 교대근무와 연장·휴일 근무에 시달려오던 김 씨는 2008년 5월 갑상선 기능 저하증 진단을 받았고, 2010년 5월 만성 골수 단핵구성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발병 이듬해 숨졌다.
유족과 반올림은 김 씨가 △30대에 발병하기 매우 어려운 만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고 △김 씨를 담당했던 주치의는 '약 15년 동안 X-선과 관련된 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한 점으로 봤을 때 병과 직업적 노출의 상관성이 높다'는 소견을 밝혔다며 산재를 신청했다.
유족과 반올림이 제출한 김 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에 따르면 김 씨가 일했던 임플란트 공정의 이온 주입 장치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X-선(전리방사선)이 발생한다. 또 김 씨와 같은 정비 작업자들이 임플란트 장비 내부에 들어가 일할 때 방사선과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또 유족과 반올림은 의견서를 통해, 클린룸에서 일하면서 저농도의 벤젠과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업무 중에 방독마스크나 방사선을 막을 수 있는 보호구 등을 착용한 적이 없었다. 김 씨의 동료들도 혈소판 수치가 낮게 나오거나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는 등 건강에 이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산재 인정 결정은 반도체 공정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로서는 처음이어서 현재까지도 산재 인정 여부를 놓고 싸우고 있는 삼성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까지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희귀병에 걸려 산재 인정을 받은 노동자는 2명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온양공장에서 5년간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은 김지숙 씨와 기흥공장에서 일하면서 유방암에 걸려 사망한 김도은 씨가 각각 지난해 4월과 12월 산재를 인정받은 바 있다.
고 김진기 씨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삼성 반도체 노동자로는 고 황유미 씨와 고 이숙영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산재가 인정됐다. 하지만 삼성 측 변호인이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근로복지공단 측이 항소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반올림은 "이번 산재 승인 결정이 고인의 억울한 죽음 앞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또한 이번 결정이 삼성과 하이닉스, 매그나칩을 비롯한 전체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과 직업병 예방에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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