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가 오히려 보조금 부추겨…승자와 패자는?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KT는 지난 1월 7일부터 각각 순차적으로 24일, 22일, 20일의 영업정지에 들어갔다. 한 통신사가 영업정지에 들어가면 신규 가입이 중단되고, 영업정지가 풀리면 다른 통신사가 같은 날 신규 가입이 중단되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제재 방식은 보조금 과다 지급을 오히려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사실상 전 국민이 이통 3사 중 한 서비스 이상에 가입된 상황에서 순차적인 영업정지는 타사 가입자를 빼앗아올 호기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재가 시작된 이후 한 이통사가 가입을 중단하면 다른 2곳의 이통사는 막대한 보조금을 풀어 해당 이통사 고객들의 번호이동을 유도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또 영업정지에 들어가는 이통사는 기기변경 할인 혜택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지키려고 했다.
2개월여간 영업정지를 주고받은 결과 당장의 승자는 LG유플러스, 패자는 SK텔레콤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기준으로 LG유플러스는 약 13만8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SK텔레콤은 약 11만3000명의 가입자를 잃었다. KT는 2만5000명을 잃어 그럭저럭 '선방'했다.
하지만 이번 '보조금 전쟁'의 최대 승자와 최대 패자는 이통사가 아닌 고객이었다. 지난 1~2월 사이 번호이동 건수는 약 215만5000건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3만6500건꼴로 시장 과열 기준인 2만4000건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앞다투어 쏟아내는 틈을 노려 적은 비용으로 최신 스마트폰으로 교체하려는 수요가 그만큼 많았던 셈이다.
반면에 과다 '보조금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고가의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됐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5의 경우 인기가 좋아 법적으로 허용되는 보조금마저 없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1개월도 지나지 않아 '버스폰' 신세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1~2개월 먼저 아이폰5를 손에 쥔 이들은 매월 약 3만 원에 이르는 기기 할부금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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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보조금 규제
방통위는 오는 14일 전체회의에서 이통사들의 보조금 과다 지급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지난해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조사된 보조금 과다 지급 행태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조금 규제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이 보조금 경쟁을 격화시키는 모순 속에서 방통위가 마땅한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조금 과다 지급으로 인해 받은 제재보다 보조금을 과다 지급해 고객을 더 끌어오는 것이 이득인 현실이 드러난 만큼, 추가 영업정지 등의 제재가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제재를 내세우기에 앞서 보조금 정책이 바람직한 이동통신 시장을 만드는 데 효과적인 정책인지 따져보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의 보조금 규제는 2000년 처음 도입돼 2008년 관련 법이 일몰되면서 자율화됐다가 2010년 부활했다. 방통위가 2010년 9월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보조금 규제 재도입의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상의 차별 금지 규정이다. 해당 규정은 '전기통신설비를 다른 이용자에 비해 부당하게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방통위는 이를 보조금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한 이용자에게 기대되는 이익 이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면 다른 이용자들에게 비용이 전가되므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 방통위는 보조금 상한선을 27만 원으로 설정했는데, 이 수치는 가입자 1인당 월평균 예상 이익의 20개월분과 단말기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보조금을 합산한 기대 이익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설정된 '27만 원'을 적용한 2010년 당시 이통시장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는 점이다. 당시 방통위의 보조금 규제는 피처폰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이후 고가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이에 따라 통화요금과 데이터 통화료를 결합한 고가의 요금제가 등장했지만, '27만 원' 상한선은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통사들이 방통위의 '27만 원' 기준을 엄격하게 지킨다면 소비자들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쓰고 싶을 때 막대한 기기값을 감당해야 한다. 가입자 포화 상태에서 소비자들이 새 기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이통사들은 가입자를 늘릴 방법이 거의 없다. 이통사들이 보조금 과다 지급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다보니 이통사와 제조사가 짜고 보조금만큼 출고가·공급가를 부풀려 사실상 소비자들이 제값을 주고 단말기를 구매하게 만드는 관행까지 생겨났다. 불만이 심해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3월 제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통3사와 제조사 3곳(삼성전자, LG전자, 팬택)을 통틀어 시정명령 및 과징금 453억3000만 원을 부과하는 데 그쳐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불렀다.
모호한 근거에서 나온 보조금 기준이 현실적이지도 않다보니 보조금 규제 부활 이후 이통3사의 보조금 기준 위반 비율이 거의 절반에 달하고, 해마다 그 비율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방통위는 보조금 규제 재도입을 결정하면서 이통사들이 보조금에 들일 재원을 요금 인하나 설비 확중에 쓸 것이라고 정책적 효과를 밝혔다. 하지만 보조금 규제 이후 이통사들의 요금 절감 노력은 기본요금을 1000원 인하한 것이 전부다. 반면 이통사에 보조금은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타사만큼 지출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며 요금제 인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핑계가 됐다.
이 때문에 방통위가 정책적 실효성이 없는 보조금 규제에 열을 올리면서 반사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휴대전화 요금제의 적정성을 더 적극적으로 따져 소비자들의 실질적인 통신비 감소에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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