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31일 최 회장의 횡령 혐의에 대해 '특수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위반에 따른 유죄로 판단해 이같이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자신이 지배하는 계열사를 범행의 수단으로 삼아 기업을 사유화한 최태원 회장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1970년대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선도해온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려 참으로 심대한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재판 중에도 책임의 무거움에 대해 진실하게 성찰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며 "재판부는 관용에 앞서 엄정한 대처의 당위성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법정 구속에 앞서 재판부에 "제가 무엇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하지 않았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지 이것 하나"라고 말했다.
▲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31일 오후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
최 회장은 2008년 10월 무렵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공모해 SK텔레콤, SK C&C 등 계열사들이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돈 중 497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계열사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후 돌려받는 방식으로 받은 약 140억 원을 비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최 회장의 성과급 과다 지급 및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했다. 함께 재판정에 선 최재원 부회장의 계열사 자금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관련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벌 봐주기 판결 공식 깨진 건 긍정적이지만 최소 형량 선고는 아쉬워"
이날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지난해 검찰이 구형한 형량과 같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최 회장에게 4년, 최 부회장에게 5년의 형량을 구형했는데 최 회장의 경우 300억 원 이상 규모의 횡령, 배임 혐의에서 줄 수 있는 최소 형량이어서 '봐주기 구형' 논란이 일었다. 일부 언론이 최 회장과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가까운 사이라고 보도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내릴 수 있는 금고형의 범위를 4~7년으로 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최고 경영자로서 SK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 계열사가 받을 충격, 국민 경제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신중을 기했다"면서도 "하지만 사업 영역의 무리한 확장과 과도한 이윤 추구라는 대기업의 폐해가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없듯이 낮은 양형을 정하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총수에 대한 봐주기 판결 공식이 깨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대법원의 양형 기준에 비추어볼 때 최소 형량을 선고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며 "이러한 양면성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판결에서도 나타났는데, 이번 최태원 회장 판결에서도 그대로 반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2003년에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7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과 관련, 최 회장은 2008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가 석 달 만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바 있다.
최 회장이 10년 만에 다시 구속 수감된 이날은 공교롭게도 SK텔레콤이 보조금 과다 지급 행위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신규 가입이 중단된 날이기도 하다.
판결 직후 SK 측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