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사망 노동자가 발생한 STI서비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사고가 처음 발생한 것은 언론 등에 알려지기 하루 전인 27일 오후 1시 22분이다. 화성공장 생산 11라인 외부의 화학물질 공급장치 중 50% 농도의 불산 희석액을 공급하는 장치에서 불산이 누출됐다.
삼성전자와 STI서비스는 당시 불산 누출 정도가 경미한 것으로 판단하고 유출 부위를 비닐봉지로 막는 임시 조치를 했지만 오후 11시가 넘어 누출이 심해지자 손상 부위로 추정되는 밸브를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교체 작업은 28일 오전 5시경 끝났지만 수리 작업을 한 박 모(34) 씨 등 5명은 약 2시간 30분 뒤인 오전 7시 30분경 불산 가스에 노출됐을 때 생기는 목·가슴의 통증을 느껴 병원으로 후송됐다.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박 씨는 이날 오후 1시경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오후 7시 30분경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 28일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불산 가스가 누출돼 협력사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불산 누출 사고 현장이 공개됐다. ⓒ뉴시스 |
사람 숨지고 나서야…삼성 늦장 신고 논란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삼성이 유관기관 보고 절차를 생략한 채 자체 수습 노력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경기도청이 사고 소식을 접한 것은 박 씨의 사망 이후인 오후 2시 40분경으로, 28일 오후가 되어서야 환경부의 사고지역 유해물질 제독 및 경찰의 사건 경위 파악 작업 등이 착수될 수 있었다. 보수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몸의 이상을 호소했을 때도 삼성 측은 관계당국에 불산 누출을 알리지 않다가 사태가 악화된 이후 태도를 바꾼 것이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삼성 측의 안이한 대처방식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밸브 교체작업에 투입된 박 씨 등은 제대로 된 안전장구도 없이 마스크만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산은 피부에 닿으면 심한 화상을 일으키고 피부 깊숙이 스며들어 뼈까지 영향을 주며, 기화 상태로 호흡기에 닿을 경우 출혈성 궤양 등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는 유독성 화학물질이다.
또 사고가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까지 공장 내 노동자 50여 명은 대피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산이 누출된 장소가 생산라인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았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지만, 사업장 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조치보다는 조업 중단을 막는 것에 더 신경을 쓴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삼성 백혈병' 논란으로 불거진 반도체 사업의 위험성과 더불어 지난해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등으로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의구심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관계당국은 사고 현장에 대한 감식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삼성 측이 안전조치 및 유해화학물질 관리 등에 소홀해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또 현행 화학물질 관련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따라 법 개정 및 관계당국의 더욱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화성공장은 환경부 지정 녹색기업으로 유독물질에 대한 지자체의 검점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고, 지난해 구미 불산 사고 이후 일제히 시행된 사업장 점검 과정에서도 불산 저장탱크 밸브의 이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