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공약은 후보들 이야기가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주위 어르신들은 자신에게 뭘 해주겠다는 것 같은데 막상 찍을 후보를 고르기는 어렵다 말한다. 왜 그런지? 어르신들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자.
▲ 주요 대선후보 노인공약 |
노년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공약이 없다
사무실로 한 어르신이 찾아왔다. "난 학교경비를 합니다. 오후 5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8시30분에 퇴근합니다. 하루에 16시간 근무를 해요. 노동법을 피해 가기 위해 휴게시간을 8시간 줘요.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은 85만 원입니다."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인지 어느새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며 말을 잇는다.
"요즘 학교가 5일 수업 하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들어가서 토, 일요일을 학교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 8시30분에 나와요. 그렇다고 휴일근로수당, 초과근로수당 이런 것 없어요. 명절 때는 일하는 게 더 힘들지요. 만약에 명절 연휴가 4~5일 되면 학교에서 혼자 오롯이 근무해야 합니다. 한 번 근무 들어가면 5일 후에 퇴근하는 겁니다."
어째서 이런 노동이 가능한가?
"보통 학교 야간경비하는 사람은 60대 후반에서 70대 노인입니다. 고령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이지요. 정말 비열한 사회입니다." 목이 멘 목소리로 하소연을 한다.
"일반 경비의 경우도 24시간 맞교대를 합니다. 노동법을 지키려면 3조 2교대를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인건비 줄이고 노동법 위반을 피해가려고 맞교대에 휴게시간 8시간 줍니다. 요사이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경비(보안경비업체)들은 실제 3조2교대를 하거든요.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대선후보들은 이런 노인들 실상을 몰라요. 경비업종에 3조 2교대를 법으로 강제하는 공약을 하면 전 그 후보 찍을 겁니다."
이00 할아버지 말처럼 박근혜, 문재인 후보 중에 어느 누구도 노년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언급이 없다. 관심이 없다. 기껏해야 노인일자리 사업기간 7개월에서 12개월을 이야기 한다. 이것도 노년유니온이 언론에 이야기한 것을 베껴 쓰기 한 것에 불과하다.
"나이 때문에 차별을 받고 노동환경도 열악하거든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부르는데 70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부르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년도 70세로 늘려야 합니다." 이00 할아버지는 사무실을 나가며 마지막 당부를 한다.
40년 친구를 갈라놓은 기초노령연금
"저 노인네 얼마나 재산이 많은데! 다 이렇게 저렇게 숨겨 놓았다구. 근데 난 고작 아파트 하나 때문에 기초노령연금을 못 받아. 그것 때문에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 돼? 나도 일하고 싶다고. 일해야 먹고산다고!"
최00 할머니는 자신 옆집에 사는 강00 할머니가 기초노령연금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에게 이른다.
"어제 최00이 내 흉을 봤다며?" 다음날 강 할머니가 흥분해서 찾아왔다.
"무슨 말씀이세요?" 최 할머니와 나 사이에 한 이야기가 새 나갈리 없기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최00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거야! 재산 많은데 이리저리 빼돌리고 기초노령연금 타 먹는다고!"
이어지는 강 할머니 하소연. "나야 13평짜리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지만, 자기는 40평짜리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먹고살 만한 사람이 그깟 기초노령연금 9만 원 때문에 이러면 안 되지"
최 할머니와 강 할머니는 40년 지기 친구다. 서로 생활이 어떤지 뻔히 알고 있다. 그런 분들이 이렇게 다투게 된 이유는 기초노령연금을 한 분은 받고, 한 분은 못 받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최근엔 기초노령연금을 받아야만 정부에서 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도 참여가 가능하다.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기초노령연금을 받기 위한 어르신들 경쟁이 40년 친구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노후소득에 관해서는 진정성 있는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얼마 전 대한노인회를 찾아간 자리에서 기초노령연금을 20만 원으로 2배가량 올리겠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믿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직전에 그렇게 약속했지만 임기 중 이를 묵살했고, 박근혜 후보 역시 이에 동조해 왔다. 지난 총선에서도 빠졌던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이번 대선에는 꺼냈는데, 과연 어르신들이 이를 믿을까?
문재인 후보는 기초노령연금액을 2배 올린다고 한다. 지난 총선을 비롯해서 야권이 지속적으로 주창하던 공약이다. 당선되면 이 약속은 지킬 것 같다. 근데 아쉽다. 대상자는 65세 이상 전체 어르신의 70~80% 수준이다. 이렇게 되면 최00 할머니 강00 할머니의 40년 우정을 되살릴 수 없다.
노년유니온은 기초노령연금을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확대하고, 그 금액도 현재의 3배로 인상할 것을 주장해 왔다. 연금액 인상과 대상자를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어렵다면, 연금액 인상보다는 대상자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
노인 의료, 질환에 관계없이 모두 보장해야
▲ 건강검진을 받는 어르신(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
문재인 후보 노인공약 중에선 그나마 의료분야가 제일 맘에 든다. 병명에 상관없이 연간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재원조달 방식이 가능할 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 노인이 되니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야! 자식들에게 부담 줄까봐 가급적 약국에서 진통제 먹지. 골다공증, 고혈압, 퇴행성 무릎관절. 어휴! 한 달에 20만 원가량 병원비에 약값이 들어가는데 감당이 안 돼. 참다가 죽는 거지."
자신의 무릎을 어루만지며 씁쓸하게 웃는 박00 할머니. 박 할머니는 얼마 전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잘 걷지를 못한다.
"왜 감기 같은 싼 것만 의료보험이 되고 비싼 병은 의료보험이 안 돼. 모든 병에 대해서 건강보험 적용하겠다는 대통령후보 뽑을 테야." 박 할머니는 자신의 소망을 말하는 대통령후보를 뽑겠다고 다짐한다.
어르신들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공약을 만나고 싶다!
한파가 몰아친다. 노년유니온 김선태 위원장 이야기가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폐렴 예방주사를 무료로 놔 줬으면 해. 겨울이면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거든."
폐렴 사망률은 2001년 8.1%에서 2010년 14.9%로 늘어났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폐렴에 걸리는 노인 인구가 계속 늘기 때문이다. 폐렴 발병 위험은 60세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다. 국내 폐렴 사망자의 98%가 60세 이상이다.
추운 겨울에 치러지는 대통령선거. 어차피 보편적인 의료를 보장하지 못할 거라면 '폐렴예방주사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무료로 놔 주겠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센스 있는 공약을 내거는 후보를 보고 싶다.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좋은 노인복지공약들. 그 속에 가려지는 노년의 노동력 착취와 차별. 선택적 복지를 통해 복지사회 실현을 가로막는 불편한 진실을 바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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