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지도 편의 때문에 '반쪽짜리' 교육, 과연 바뀔까?
7차교육과정이 도입된 2002년 이후, 공식적으로는 문과-이과 구분이 사라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선 여전히 고교 2학년 때 문과와 이과로 반을 나눠서 교육하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입시지도의 편의 때문이다. 대학 측이 입시에서 문과-이과 구분을 없앤다면, 고등학교의 임의적인 문과-이과 구분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대의 결정이 주목되는 이유다.
박재현 서울대 입학본부장은 <동아일보>에 "서울대 입시에서 문과와 이과의 장벽을 완전히 허물기 위해 학내에서 논의하고 있다"며 "일부 반대하는 학과들이 있으나 학내 컨센서스(합의)를 거쳐 문·이과 교차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서울대의 이런 입장에 대해 "고교교육은 물론 대학교육의 형태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뿌리깊은 고정관념 '문·이과 구분', 근거는 없다
고교의 문·이과 구분은 한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만 있는 관행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 시대부터 내려온 관행인 탓에 이런 구분에 대한 고정관념이 뿌리가 깊다. 자연과학 교양이 부족한 인문학자, 사회에 무관심한 과학기술자를 길러낸다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문·이과 구분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이 워낙 견고해서 큰 힘을 얻지 못했었다. 우리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해 무관심과 폄하, 혹은 신비화와 찬양이라는 양 극단만 있을 뿐 비판적인 성찰은 잘 이뤄지지 않는 것 역시 그 결과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학문과 직업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관행은 전혀 근거가 없다. 이른바 문과로 분류되는 지식만 필요로 하는 학문과 직업, 이과로 분류된 지식만 요구하는 학문과 직업은 의외로 많지 않다. 문과-이과 소양을 균형있게 요구하는 학문과 직업이 오히려 다수다. (☞관련 기사: "경직된 문과-이과 구분이 '황우석 사태'낳았다" , "문과-이과의 차이는 제도가 만든 허상에 불과" )
이른 나이에 문·이과 나누고 관심 차단…기업 경쟁력도 떨어뜨려
학문 간 융합이 강조되는 현 추세 역시 뿌리깊은 문·이과 구분에 대한 비판에 힘을 실었다. 환경 및 에너지 문제 등 문·이과를 구분하는 고정관념으론 제대로 접근하기 힘든 문제들이 부각되는 현 상황 역시 이런 지적에 무게를 싣는다.
최근에는 경제계에서도 문·이과 구분에 대한 비판이 자주 나온다. 삼성-애플 소송 등 잇따르는 특허분쟁에 제대로 대비하려면, 기술과 법률을 균형있게 익힌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데 뿌리깊은 문·이과 구분 때문에 그게 원활하지 않다는 주장이 한 예다. 이른 나이에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차단된 채로 자란 탓에, 기업 안에 있는 '이과' 출신 엔지니어와 '문과' 출신 마케터, 법률가 등이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렵다는 지적도 종종 나온다. 문·이과 구분이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도 해친다는 것이다.
안철수 "문·이과 구분, 허물어야"
또 요즘 나오는 금융상품들은 수학을 많이 이용하는데, 금융권에 지원하는 이들은 주로 문과 출신이고 수학에 재능이 있는 청소년들은 주로 이과를 택하는 불균형 때문에 대응이 쉽지 않다는 불만도 금융계에서 종종 나온다.
실제로 벤처기업인 출신인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과거 인터뷰와 <안철수의 생각> 등에서 문·이과 구분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안철수 "'회색분자'가 왜 나쁜 말이죠?" , 안철수 "보편적 복지, 세금 혜택 실감케 하는 체제" )
공식적으론 문·이과 구분 사라졌지만, 학교 현장과 사회에선 여전히 통용
정부 역시 임의적인 문·이과 구분이 별 근거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고교의 문·이과 구분은 2002년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고 나서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하지만 학교 현장과 사회에선 이런 구분이 여전하다. 대부분의 대학이 인문계열과 자연계열로 나눠 신입생을 선발하고, 이에 맞춰 고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을 인문사회과정·자연과정 등으로 반을 나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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