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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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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한윤수의 '오랑캐꽃']<583>

아시지의 프란시스코는 성인(聖人)이지만
필리핀 노동자 프란시스코는 속인이다.

그는 일은 잘했다.
하지만 너무 좀스러워서 동료들한테 왕따를 당했다.
필리핀 친구들이
"사다리 타기해서 뭐 좀 사먹자!"
고 하면
"난 안 먹고 빠질래."
하니 무슨 인기가 있겠는가.

그가 퇴직금을 못 받고 귀국할 때 신신당부했다.
"외환은행 가서 해외송금계좌 만들어놓고 가."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싫어요. 안 만들래요."
"왜?"
"그냥 한국 통장으로 받을래요."
"왜?"
"지금은 원화가치가 낮아서 *달러로 바꾸면 손해예요. 그냥 한국 돈으로 갖고 있다가 나중에 원화 가치가 오르면 바꾸려구요."
"그럼 니 마음대로 해."

그러고 귀국했는데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희귀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그에게는 한국 통장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기업은행 통장,
이건 한국의 친지에게 맡겨놓고 왔다.
돈이 들어올 통장이니까.

또 하나는 한국시티은행 통장,
이건 *폐기된 통장이므로 버릴까 하다가
그냥 필리핀에 갖고 왔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한국시티은행 통장으로
퇴직금을 넣은 거다.
필리핀으로 갖고 와서 찾지도 못하는 통장으로.
환장하지!

하도 노랭이 짓을 해서
"너 그러다 언제 한 번 크게 당한다."
고 한 적이 있는데
내 예언대로 된 거 같다.

미아리에다 차려?

*지금 달러로 바꾸면 : 해외송금계좌는 자동적으로 달러로 환전되어 송금되므로, 회사에서 입금하는 즉시 달러로 바뀐다.

*폐기된 통장 : 그는 돈을 다 찾아 잔액을 0원으로 만들면 통장이 자동적으로 폐기되는 줄 알았단다. 하여간 제멋대로 생각하는 데는 선수다.

*후일담 : 그는 한국시티은행 통장과 현금카드를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부치려다가 적발되어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우송 중에 분실되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는 모든 우편물이 전수 검사된다. 그래서 통장과 카드를 인편에 보낼 수밖에 없는데 믿을 사람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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