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과정에 개입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는 고등법원 판결에 상고를 포기해130억 원을 배상하게 됐다. 삼성 스스로 경영권 승계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한 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같은 사건에 대한 삼성특검의 수사결과와는 엇갈리는 결론이 난 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 조직적 배임 최종 확인"
지난달 22일 대구지방법원 2심 재판부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996년 경영권 승계의 목적으로 계열사인 제일모직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인수하지 못하게 했다며 13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이 회장 측은 지난 12일까지 상고하지 않았다. 따라서 2심 판결이 최종 판결로 확정됐다.
경제개혁연대는 17일 논평을 내고 "이는 법원이 이재용 씨로의 지배권 승계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비서실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조직적인 배임행위에 의한 것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경제개혁연대는 "또한 회사와 주주의 이익보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저지른 수많은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삼성특검은 부실수사 내지 사실상 봐주기 수사로 일관해 왔는데, 이에 대해서도 법원이 그 결론을 뒤집은 것으로 과거 검찰과 삼성특검의 직무유기를 확인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61억 원 받아 삼성 지배구조 정점에 올라선 이재용
이 사건은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1억 원을 증여받아 삼성 계열사 주식에 투자해 550억 원으로 늘린 후, 1996년에 에버랜드 주식을 CB(전환사채, 주식으로 전환하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 형태로 주당 7700원(전환가격)에 인수했다.
이 사장은 이를 계기로 에버랜드 지분 25.1%를 확보하게 됐고, 작년 말 기존 최대주주인 삼성카드가 보유 지분을 처분함으로써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의 새로운 최대주주가 됐다.
경제개혁연대, 이건희 및 제일모직 전직 대표이사 등 상대로 주주대표소송
여기서 터무니 없이 낮은 CB 발행 가격이 문제가 됐다. 또 제일모직 등 법인주주들이 고의로 실권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환사채 발행 전 제일모직은 에버랜드 지분의 14.14%를 보유한 2대주주였으나 전환사채 배정분을 실권함으로써 지분율이 5.00%로 낮아졌다. 제일모직이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가치가 이재용 사장 등의 전환권 행사로 인해 희석되었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판단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이건희 회장과 유현식 전 제일모직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청구금액은 제일모직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실권하지 않고 인수했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인 137억여 원으로 책정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2011년 2월 18일, 청구금액 중 130억여 원을 배상하도록 하는 사실상 원고 전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 측은 즉각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지난 8월 22일 선고에서 항소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건희 등이 직접 또는 비서실을 통해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피고 이건희의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등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 측이 시한인 9월 12일까지 상고하지 않음으로써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판단…"법원이 삼성특검 직무유기 확인시켜줘"
이런 결과만 놓고 보면, 법원이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위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똑같은 사건이 검찰 수사에선 무혐의 결정, 형사 재판에선 무죄 판결이 났다는 점이다.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지난 2000년 곽노현 교수 등 법학자 43명이 이 사건에 대해 고발장을 제출하면서였다. 그러나 검찰은 장기간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고, 결국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이후 개시된 삼성특검의 수사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삼성특검은 2008년 4월, CB 헐값 발행에 따른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행위만을 문제 삼아 기소하고, 제일모직 등 법인주주들이 실권한 대목에선 무혐의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기소된 부분에 대해서도 2009년 5월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판결은) 법원이 이재용 씨로의 지배권 승계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비서실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조직적인 배임행위에 의한 것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해준 것"이라며 "회사와 주주의 이익보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저지른 수많은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삼성특검은 부실수사 내지 사실상 봐주기 수사로 일관해 왔는데, 이에 대해서도 법원이 그 결론을 뒤집은 것으로 과거 검찰과 삼성특검의 직무유기를 확인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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