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방송이 발행하는 경제주간지 <더 스쿠프(The Scoop)>는 최근 이성기 씨의 이 같은 주장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CJ 측은 '명예 훼손'을 이유로 해당 기사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출판물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하지만 법원은 CJ 측 요구를 기각했다. 해당 기사를 삭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 "CJ 그룹 수뇌부의 시민 폭행 사주 사건 보도, 정당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51민사부(강승준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판결문에서 해당 기사가 사실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성기 씨 폭행 피해 관련 의혹에 대한 보도가 정당하다는 것. 이로써 평범한 시민 이성기 씨가 십수 년째 안고 있던 사연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이 씨는 이재현 회장과 경복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이 씨가 경복고 동창회 관련 일을 했던 까닭에, 이 씨는 경복고 출신 정·재계 및 언론계 유력 인사를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 유력인사들이 이 씨가 겪은 폭행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이 씨에 따르면, 이 씨는 경복고 재학 시절 이재현 회장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고교 졸업 이후에도 이 회장과 교류가 있었다. 이 씨는 지난 1987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 '규수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당시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에는 이성기 씨가 이재현 회장을 향해 "재현이 왔구나"라며 반기고 서로 악수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또 이재현 회장이 이 씨의 아버지 및 친척들과 웃으며 인사하는 장면도 있다.
"여섯 차례 집단폭행과 협박" vs "폭행 사주한 적 없다"
이 씨에 따르면, 친구였던 이재현 회장과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1998년 즈음, 이재현 회장의 부친이며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 씨에 관한 나쁜 소문이 돌았다. 이재현 회장은 이 소문을 퍼뜨린 게 이성기 씨라고 의심했고, 그래서 조직폭력배에게 이 씨를 폭행하도록 사주했다는 게 이성기 씨의 주장이다. 이 씨는 이맹희 씨 관련 소문을 퍼뜨린 적이 없으며, 이재현 회장 측이 오해를 했다고 주장한다.
이성기 씨는 1998년 말부터 2000년 초 사이에 집단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이는 경찰 및 병원 기록으로 입증되는 사실이다. 집단폭행에 가담한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지난 2003년 서울중앙지법원에 약식기소 됐고,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문제는 '이 폭행을 누가 왜 사주했느냐'라는 점이다. CJ 그룹 측은 "이 회장 및 CJ 그룹이 폭행을 사주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 "이재현 회장이 폭행 지시한 적 없다"…법원 "폭행 의혹 보도는 정당"
반면, 이 씨는 1998년 말 조직폭력배가 찾아와 "이재현 회장에게 전화를 걸면 혀를 잘라 버리고 앉은뱅이로 만들겠다"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집단폭행을 당했는데, 그때마다 "이재현 회장님 잘못했습니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당시 집단폭행, 그리고 이후 이어진 사건들에 대한 이 씨의 묘사는 구체적이다. 그는 이런 내용을 A4 용지 수십 장에 사건일지 형식으로 기록해뒀다. 이렇게 기록된 사연 가운데는 사실관계 입증이 쉽지 않은 대목도 많다. 실제로 이 씨는 지난 2007년 이 사건에 대해 검찰에 진정서를 냈는데, 당시 검찰은 "이재현 회장이 조폭에게 폭행을 지시한 적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근거로 CJ 측은 이성기 씨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나 최근 법원 판결을 계기로 상황이 반전됐다. 이성기 씨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재벌총수의 시민 폭행 의혹,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 CJ 그룹 로고. |
하지만 이번 판결의 골자는 이성기 씨가 겪은 피해를 다룬 기사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한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또 설령 일부 내용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없더라도, "그렇게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라는 내용도 판결문에 담겨 있다. 법원이 이성기 씨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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