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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메달'에도 순위가 있다?

[런던올림픽] '4년에 1번' 관심도 못 받았지만 도전 멈추지 않은 사람들

올림픽에서 화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마지막으로 국제무대를 밟은 선수들의 이야기다. 이 중에는 마지막까지 메달권에 진입해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성적이 저조해도 그동안 한국을 대표해 전 세계의 쟁쟁한 선수들과 겨뤄온 이들이 받는 박수는 남다른 감동을 준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도 '노장' 선수들은 주목을 받았다. 독일 프로 핸드볼의 전설이 된 윤경신(39)이 이끄는 남자 핸드볼팀은 6일(현지 시각) 덴마크전에서도 패하며 조별예선에서 전패를 당했다. 전성기가 지난 윤경신은 5경기에서 4골만을 기록하며 대표팀에서도 은퇴했다. 하지만 독일 프로 핸드볼 리그의 최고 선수이면서도 국제경기가 열릴 때마다 대표팀의 부름에 응했던 그였기에, 성적에 대한 비난이 아닌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인 여자 탁구 대표 김경아에게도 이번 올림픽은 마지막이었다. 여자 탁구 단식 8강에서 싱가포르의 펑텐웨이에게 역전패를 당한 그는 올림픽 마지막 인터뷰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역도 영웅'인 장미란도 메달 진입에 실패했지만 마지막 시도 후 정든 바벨에 '손 키스'를 하는 모습이 감동을 안겨줬다. 사이클 남자 옴니엄에서 11위를 기록한 한국 사이클의 간판스타 조호성(38)도 오랜 도전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퇴장하는 스포츠 스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희석됐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성적 지상주의가 언론과 시청자의 관심을 '오늘의 메달'에 쏠리게 했다. 하지만 선수단에는 여론의 관심도 없고, 메달권 진입 가능성이 높지 않아도 도전을 선택해 그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인 이들도 있다.

메달 가능성 높지 않아도 도전한 육상·수상 종목의 한국 선수들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총 22개 종목에 출전한 245명의 선수로 꾸려졌다. 12일(한국 시각) 현재, 22개 종목 중 펜싱이나 유도, 사격처럼 메달을 획득한 종목은 10개, 은메달을 확보한 복싱을 합하면 11개다. 나머지 11개 종목 중 4강까지 진출했던 여자 배구와 핸드볼, 남자 축구를 빼면 8개 종목이 남는다.

조호성의 사이클과 장미란의 역도를 제외한 6개 종목은 메달이나 스포츠 스타로도, 스포츠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근대 5종, 육상, 요트, 조정, 트라이애슬론, 하키다.

비인기 종목의 대표격으로는 육상이 있다.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한 한국이지만 10개 종목에서 10위 안에 선수를 진입시키겠다는 당초 목표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육상 불모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경쟁을 통해 런던행에 성공한 육상 선수들은 아무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탁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이 나왔던 8일(현지 시각) 고등학교 시절 주니어 랭킹 세계 3위까지 올라 기대를 모았던 육상의 정상진 선수는 남자 창던지기 예선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인 82.05m에 약 6미터 못 미치는 76.37m를 던져 예선 탈락했다. 남자 장대높이뛰기 한국 기록(5.63m) 보유자이자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던 김유석 선수 역시 예선 탈락했다.

▲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당시 정상진 성수. ⓒ연합뉴스

▲ 8일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장대높이뛰기 예선에 도전한 김유석 선수. ⓒ로이터=뉴시스

남자 세단뛰기 김덕현 선수는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세단뛰기 예선에서 왼쪽 발목을 다쳤다. 이 때문에 멀리뛰기 결선까지 포기해야 했던 그는 발목 인대 3개가 끊어지는 부상에도 올림픽을 위해 수술보다는 재활을 선택했고, 한때 세단뛰기보다는 발목에 부담이 적은 멀리뛰기로 종목 변경을 고심하기도 했다. 김덕현은 런던에서 열린 세단뛰기 예선에서 발목 부상 후유증 때문에 자신이 세운 한국기록(17.10m)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16.22m를 뛰고 탈락했다.

▲ 7일 남자 세단뛰기 예선전에 출전한 김덕현 선수. ⓒ로이터=뉴시스

남녀 통틀어 유일하게 단거리 육상에 출전했던 국내 최강자 정혜림 선수는 100m 허들 예선에서 탈락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최윤희 선수도 자신의 한국기록(4.41m)을 경신하는 4.50m를 뛰어야 결선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목표였지만 최윤희 선수는 도전을 택했고, 예선 탈락했다.

▲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당시 정혜림(가운데) 선수. ⓒ연합뉴스

예선이 없는 경기에서도 육상 선수들은 세계 육상계의 높은 벽과 마주쳤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최고 기록인 6위를 기록해 기대를 모았던 경보의 김현섭 선수는 남자 20㎞ 경보에서 17위를 기록했다. 여자 마라톤에서는 정윤희 선수가 2시간31분58초로 41위를 기록해, 출전한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을 올렸다.

▲ 지난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6위로 들어오고 있는 김현섭 선수. ⓒ연합뉴스

수상 종목에서는 요트 남자 레이저 종목에서 하지민 선수가 첫날 경기에서 종합 6위에 오르며 결선 진출이 기대됐지만 6차 레이스에서 기권, 7차 레이스에서 실격당하면서 24위까지 밀려나 아쉬움을 남겼다. 조정 남자 싱글스컬에서는 김동용 선수가 21위를 기록했다.

'철인 3종 경기'라고도 불리는 트라이애슬론에서는 허민호 선수가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진출했다. 다른 선수들에 밀려 54명 중 최하위에 그쳤지만, 그동안 불모지였던 종목에서 도전해 올림픽 무대에 처음 진출했다는 점에서 기록을 남겼다. 근대5종은 최근 올림픽 출전자격을 갖춘 선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경쟁력이 강화됐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황우진, 정진화 선수의 메달 획득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최고 기록은 11위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상대팀의 페널티코너 때 날아오는 공을 몸으로 막는 투혼으로 은메달을 획득하며 감동을 줬던 남자 하키는 이번 올림픽에서는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여자 하키팀도 지난 8일 독일과 벌인 7·8위전에서 패하면서 8위를 기록했다.

이밖에도 수영 종목에서는 박태환 선수가 은메달 2개를 획득했지만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8일 다이빙 여자 10m 플랫폼 종목에 출전한 대표팀 최연소 김수지(14) 선수도 215.75점을 받아 26명 중 26위를 기록했다. 박태환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진출한 것도 15세 때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린 나이에 경험한 올림픽이 앞으로 김수지 선수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2012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남자 하키 대표팀이 지난달 30일 올림픽파크 리버뱅크에서 뉴질랜드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의 탈락 소식은 언론 보도를 통해 짤막하게 전해졌다. 하지만 국내 최고라는 위치를 넘어 국제무대에 도전하는 이들이 흘린 땀방울은 메달리스트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감동을 주는 건 메달만이 아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 간 스포츠 행사는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대결이기에 성적을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4년간의 훈련을 높은 순위로 보상받은 선수들의 환희에 국내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순위 경쟁만이 올림픽이 주는 감동의 전부는 아니다. 런던올림픽에서 신아람 선수의 오심 논란으로 펜싱이 주목받으면서 새롭게 펜싱의 매력을 알게 된 이들이 펜싱 동호회나 펜싱 강좌에 문의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순위와 별개로 최선을 다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낯선 스포츠의 매력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은 언론의 몫이기도 하다.

8일 은메달을 딴 남자 탁구대표팀의 유승민 선수는 한국 탁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프로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는 정부의 지원과 함께 더 많은 자본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이지만, 한편으로는 비인기 종목에 관심을 가지고 표를 구입하는 관중이 있어야 지속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 '펜싱 붐'처럼 '보는 것'을 넘어 '따라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불가능한 과제도 아니다. 한국이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입시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TV가 아닌 필드(field)에서 경험할 수 있는 스포츠를 제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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