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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총탄도, 대지진도 못 꺾은 '월계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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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총탄도, 대지진도 못 꺾은 '월계관의 꿈'

[런던올림픽] <1> 올림픽을 보면 '세계'가 보인다

다시 올림픽의 계절이 찾아왔다. 많은 사람이 월계관의 꿈을 품고 런던을 찾은 각국 선수들의 몸짓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이어갈 것이다. <프레시안>은 주제별로 올림픽을 바라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올림픽을 더 다채롭게, 그리고 폭넓게 바라보자는 취지다. <편집자 주>

올림픽은 전통적으로 참가국의 국력을 반영한다. 최근에는 스포츠 자체가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즐기는 이들이 늘었지만, 국가별 라이벌 의식은 여전하다. 이 때문에 4년 동안 변화한 국제 정세가 올림픽에 영향을 끼치고, 또 다른 화제를 만들어내곤 한다.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국가에서는 여론이 잠시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서 정치권이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역경을 맞이한 나라에서는 국민들에게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드는 계기도 된다. 경제위기와 '아랍의 봄' 등 국제사회가 다사다난한 4년을 보낸 뒤 열리는 런던올림픽 역시 마찬가지다.

G2는 런던올림픽에서도 이어진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한 올림픽에 600명이 넘는 선수를 내보내 참가국 중 금메달을 가장 많이 획득했다. 21세기 들어 급격히 성장한 자국의 경제력을 올림픽 성적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미국은 메달은 더 많이 땄지만 금메달 개수는 중국보다 적었다. 금메달 개수에서 미국이 중국보다 뒤처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국의 성장과 이에 대해 위협을 느낀 미국의 뒤바뀐 처지는 묘하게도 올림픽 직후 벌어진 상황과 연결됐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 금융위기의 서막을 알렸고, 현재까지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은 재정적자와 실업률 상승에 신음하는 반면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들의 국제적 위상은 나날이 높아졌다.

올해 초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화제가 됐던 세계적인 IT기업 애플의 중국 노동자 착취 논란 역시 그 이면에는 미국에서 전통적인 일자리 창출원이었던 제조업의 쇠퇴에 대한 우려와 그 시장을 고스란히 차지한 중국에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논란은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재현됐는데, 미국의 유명 의류업체 랄프 로렌이 디자인한 미국 선수단 유니폼이 정작 생산은 중국공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올림픽에서도 마스코트 기념품과 배지, 심지어 각국 국기까지 포함해 전체 기념품의 65%를 장악했다.

미국 정치인들 사이에서 '미국 노동자들은 놀고 있는데 국가대표 유니폼까지 중국에 맡기느냐'부터 '중국산 유니폼을 다 불태워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자 중국 <신화통신>은 '스포츠와 정치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촌평을 날렸다.

▲ 중국산 논란을 빚은 미국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 ⓒAP=연합뉴스

결국 미국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부터 '국산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미국의 선수단 유니폼이 베이징올림픽 때도 중국산이었다는 점을 보면 현재 미국 의원들의 '반발'은 자국 여론을 의식한 반응에 가깝다.

'메이드 인 차이나'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타임>은 미국과 중국 선수단 유니폼을 '최악의 올림픽 유니폼' 6개국에 포함시켰다.

대지진 겪은 아이티, 이민 2세들이 출전

2010년 1월 규모 7.0의 강진으로 30만 명이 숨지고 150만 명의 이재민을 냈던 최빈국 아이티는 올림픽에 단 5명의 선수를 보냈다. 그것도 4명은 아이티 출신 부모를 둔 미국인이다. 지진 피해복구 작업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대표팀을 꾸릴 여유가 없는 탓이다. 아이티 국민들은 하루 약 2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계를 꾸리며 수십만 명이 아직도 집을 구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여자 육상 200미터와 400미터에 출전하는 21세의 말레나 웨시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의 나라를 위해 아이티 국기를 달고 출전하기로 결심했다. 3단뛰기 종목에 나서는 사미르 레인(28)은 하버드대에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와 방을 같이 쓴 과거로 주목을 받았다. 로스쿨을 졸업한 레인은 아이티 출신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비영리재단 '점프 포 아이티 파운데이션' 설립 움직임을 홍보하기 위해 출전을 결심했다. 레인은 <AP> 통신에 억만장자인 주커버그에게도 기부를 부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나 영국같은 다민족 국가의 스포츠 선수들이 다른 나라를 대표해 출전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아이티 국적으로 출전하는 미국인은 이밖에도 800미터에 출전하는 30세의 모이세 조세프, 100미터 허들에 출전하는 28세의 제프리 줄미스가 있다. 본래부터 아이티 국적인 선수는 유도의 리노스 데스라빈(21)이 유일하다.

아이티는 연습용 트랙이 있는 5곳 중 3곳이 이재민들의 텐트로 채워져 있다. 아이티 올림픽위원회의 예산은 40만 달러로 미국 올림픽위원회 예산의 0.23%에 불과하다. 아이티는 1900년 파리올림픽에 처음 출전했고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땄다.

지난해 3월 대지진을 겪은 일본도 올림픽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들의 선전으로 국민들이 잠시 아픔을 잊길 고대하고 있다. 선수 292명 중 약 10분의 1이 지난해 지진 피해를 직접 겪었던 도호쿠 지역 출신이다.

'아랍의 봄', 스포츠에도 오나

중동은 튀니지에서 시작해 최근 시리아 내전으로까지 번진 민주화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일명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시위가 중동을 변화시키면서 새 체제를 맞이한 중동 국가에서 올림픽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아랍의 봄'이 일어난 국가 중 튀니지에 이어 두 번째로 독재자를 몰아낸 이집트에서는 지난해 반정부 시위에 앞장서다 복부에 총상까지 입었던 유도선수 알리 코우스로프가 올림픽에 참가한다. 그는 <CNN>과 한 인터뷰에서 수십 년간의 독재를 끝내고 민주정부를 수립한 이집트를 대표해 나선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튀니지에서도 지난 2009년 훈련장에 붙어있던 독재자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사진을 찢었다가 선수자격을 잃었던 체조선수 와지디 부알레그가 벤 알리 축출 이후 다시 출전 기회를 얻었다. 지난해 튀니지 민주화 시위 당시에도 선봉에 섰던 그는 <CNN>에 "(경기 후) 인터뷰를 할 때 먼저 대통령과 정부에 감사하다고 말한 뒤 경기 내용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다"며 "미친 짓이지만 현실이었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브루나이는 처음으로 올림픽에 여성 선수 출전을 허용했다. 여성에게는 참정권도 허용하지 않고 심지어 운전대마저 잡지 못하게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아랍의 봄' 이후 여권 신장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바 있다.

올림픽까지 간 국제 갈등

이집트·튀니지와 달리 내 상태로 진입한 시리아의 분위기는 우울하다. 시리아 정부는 육상 등의 종목에 10명의 선수를 내보내면서 현재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훈련은 진행되어 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최국인 영국이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와 가깝게 지내는 모와파크 주마 시리아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입국을 불허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는 가운데 런던에 꼭 입성하겠다고 밝혔던 주마 위원장도 불참을 결정하는 등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알아사드 정권 종식을 희망하는 서방국과 알아사드 정권 사이의 껄끄러움이 올림픽까지 이어진 셈이다.

시리아의 우방으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시리아 사태 해법을 놓고 미국, 유럽 등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올림픽 관전을 위해 런던을 찾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유도 외교'를 벌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캐머런 총리는 유도 유단자인 푸틴 대통령과 유도 경기를 관전하면서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유럽 측의 해법을 수용하라고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이 선호하는 망명지라는 점에서 두 정상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해 푸틴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오던 전직 러시아 스파이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2006년 폴로늄-210에 중독돼 암살당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욱 냉각됐다. 하지만 지난해 캐머런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관계개선의 물꼬를 텄다. 푸틴이 런던행을 확정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포클랜드(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로 부름) 섬을 놓고 영국과 전쟁을 벌였고 지금까지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런던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52년 만의 '영국 축구 단일팀'은 반쪽팀

올림픽 주최국은 축구 종목에 자동 출전권을 얻게 된다. 유리한 조항임에도 올해 주최국인 영국에게는 그리 유쾌한 소식은 아니다. 축구 종주국으로서 자동 출전권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경기에 나서지만, 이 때문에 해묵은 영국 축구 단일팀의 어두운 역사가 다시 부각됐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사실상 축구대표팀이 없다. 월드컵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각각 설립한 축구협회를 통해 따로 출전한다. 축구협회가 아닌 '국가'로 출전 단위가 제한되는 올림픽에는 1960년 로마올림픽 이후 아예 출전하지도 않았다. 영국의 통치에 반발하는 각 지역의 분위기, 자기 지역 축구에 대한 자긍심 등이 작용해 '단일팀만 구성하면 세계 최강'이라는 축구팬들의 기대를 매번 저버렸다.

런던올림픽을 맞아 영국은 다시 단일팀 구성에 나섰지만 결국 웨일스만 합류하고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불참했다. 스코틀랜드는 지난 5월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묻는 찬반투표에서 반대가 57%로 33%에 그친 찬성의견을 압도할 정도로 정치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축구에서만큼은 오래된 '반영'(反英) 감정이 지속됐다. 단일팀의 면모를 봐도 잉글랜드 출신 13명과 웨일스 출신 5명으로 팀을 꾸려, 사실상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는 대부분 잉글랜드 선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쪽 단일팀'이라는 비난 속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간판 선수이자 웨일스 출신인 라이언 긱스(39)가 선수생활 막판에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점이 축구팬들에겐 그나마 위안이다.

▲ 웨일스 출신의 축구스타 라이언 긱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됐다. ⓒAP=연합뉴스
올림픽 찾는 '불량국가'들과 국적 없는 선수들

서방 국가들에 의해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국가들도 올림픽에서는 대등한 조건 하에 경기를 치른다. 북한은 세계적 수준의 여자축구팀을 비롯해 역도, 유도, 복싱 등 10개 종목 56명의 선수를 보냈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은 후계체제에서 이뤄지는 첫 올림픽 출전이기에 자국 내 선전에 활용할 수 있는 결과를 고대할 만하다.

핵 개발 의혹으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은 54명의 선수를 런던으로 보냈다. 이란은 특히 자신들을 맹비난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대결하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이란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 종목 등에서 이스라엘 선수와 경쟁하기를 거부했지만 이번에는 주권국으로서 대결을 먼저 피하지 않겠다고 밝힌 셈이다.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에 시달렸던 아프가니스탄은 단 6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공식으로 출전 자격을 얻은 이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프간에 사상 첫 메달을 안겼던 로훌라 나크파이와 네사르 바하위 2명이고, 나머지는 출전 자격은 없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초청을 받아 합류할 수 있었다. 육상 100미터 달리기에 출전하는 타미나 코히스타니는 아프간 선수단에서 유일한 여성 선수다.

지난해 독립한 남수단은 아직 국가 올림픽위원회도 갖추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IOC에 가입하려면 국가가 세워진 후 2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해 런던올림픽에서 남수단 선수를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IOC는 남수단 선수들이 수단 대표단에 합류해 출전하라고 권고했지만 지난 수십 년간 내전으로 2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뒤 갈라섰던 수단과 함께 출전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망명했던 남수단 출신 마라토너 구오르 마리알(28)에게 IOC가 이례적으로 독립 선수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처음으로 회원국이 아닌 국가 출신 선수가 올림픽에서 뛰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남수단에서는 사실상 남수단 대표 선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마리알 등 올림픽에 국적 없이 출전하는 선수는 총 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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