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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에 복고풍이 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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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에 복고풍이 부는가

[창비주간논평] 추억이 주는 '힐링'의 위험성

바야흐로 정치 마케팅의 계절이다. 21세기에 권력을 얻으려면 대중의 호감을 사는 매력이 필수라고 한다. 정치이념이나 정책의 내용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복지, 성장, 통일 등을 보기좋게 버무린 각 캠프의 정책 메뉴들은 사실 어떻게 다른지 잘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에 비해 정치인 개인의 이미지나 인간적 매력은 훨씬 쉽게 다가온다.

더욱이 고정표가 아니라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이른바 스윙 보터(swing voter, 정치상황에 따라 표심을 달리하는 유권자층)가 집중적으로 구애를 받다보니,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강조하기 위한 애매모호한 일종의 상징조작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청와대 퍼스트 레이디 출신다운 엄격하고 곧은 이미지의 박근혜 의원은 '내게 행복을 주는' 부드러운 솜사탕 같은 정치인으로, 또 인권변호사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로 익히 알려진 문재인 의원은 갑자기 특전사 군복 차림의 '대한민국 남자'로 집중 홍보되고 있다.

물론 정치인도 '변신'이 필요하다. 사회가 바뀌고 시대적 요청이 변한다면 새로운 정책과 이념, 참신한 이미지를 모색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정치인이든 가족 배경에서부터 학창시절, 정치적 성장과정 등을 멋들어지게 포장해 유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 전문가들의 감각을 빌어 정치 소비자에게 즉자적으로 호소하려는 이미지 공세는 과유불급이다. 기업의 경험 많은 인사 담당자일수록 실속없는 스펙으로 가득한 입사지원서에 현혹되지 않듯이, 우리 유권자들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거듭 경험하면서 나름의 판단기준을 갈고 닦았을 것이다.

정치인의 이미지 변신과 복고주의

그런데 선거 마케팅이라는 특별 이벤트의 일시적 고객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참여하는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평범한 일상을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이 정치를 맞닥뜨리고 느끼는 경험들은 과연 어떤 것일까?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실세들의 노림수와 꼼수를 욕하고 나라꼴을 걱정할 때, 과연 우리는 진지하게 '정치'를 고민했던 것일까? 정치를 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는 그 순간은 바로 시대의 권력이 개인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왔음을 체감할 때이며, 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그러한 의식이 증폭되어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역사의식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시대에 대한 집합적 기억은 시민과 시민을 연결해주는 의미의 저수지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현재의 위기는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만성화, 고성장과 계층상승의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목격하면서 한국사회는 정치적 복고의 의미를 시험받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해서 가난을 면했던 그 시대, 강력한 지도자가 어쨌든 일사불란한 질서를 이끌어갔던 그 시대, 나라가 앞서고 백성은 뒤따르면 된다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위로가 될 수 있는가?

대중문화에서도 향수와 복고는 익숙한 문화코드로 등장하고 있다. 첫사랑을 아련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영화,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주인공이 젊은이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들이 관객을 끌어들였다. 그때 그 시절의 히트곡을 편곡하여 다시 라이브 무대에 올리는 쇼는 이제 익숙한 형식이 되었다. 아직 젊고 아름다웠던 그때,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익숙한 기억과 함께 다시 떠올리는 문화코드는 정말 마음을 위로해주는 '힐링'효과가 있는 것일까?

정치적 과거회귀와 '힐링'의 위험성

1970년대 권위주의시대와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매우 다른 외양을 띠고 있지만 몇가지 공통점도 있다. 첫째는 규율이다. 권위주의시대의 규율은 장발 단속과 통행금지, 군대식 규율과 체벌을 강요하는 학교 교육처럼 적나라한 억압으로 실행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간의 치열한 경쟁을 강조하지만 기실 사회가 정해놓은 경로에서 탈락한 개인들을 루저로 낙인찍는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 자기개발과 스펙관리 등 스스로를 규율해야 하는 복잡한 매뉴얼에 얽매이게 된다.

둘째는 개인을 무력하고 왜소하게 만드는 경향이다. 유신과 긴급조치 시대에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과 인권을 언제든 박탈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기실 사회문제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빈곤과 실업은 복지정책만으로 구제할 수 없는 개인 책임의 문제이며, 건강관리와 자녀양육도 개별 부모의 책임이라고 하니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사회적 불평등과 비효율을 오직 개인이 상대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역설적으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피로사회'를 살아가다보면, 익숙한 과거가 편안해 보이고 또 어린아이처럼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복고와 '힐링'이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5·16쿠데타와 유신을 정당화하려는 최근의 논란들은 정치적 복고가 초래할 왜곡과 위험을 뚜렷하게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희망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희망을 계속 안고 가는 길이 버겁고 고통스럽더라도, 앞으로 가는 발걸음을 늦추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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