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립되는 관점을 균형 있게 소개하는 것은 매체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상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의문을 제기하는 때에도 '좌파'로 몰아붙이면서 '국론통일'이라는 유신시대의 구호를 들고 나오는 소위 주류 언론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일단 도대체 무슨 의미로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팩트의 확인은 좌, 우 혹은 진보, 보수의 성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다. 그런데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확인을 요구하는 것을 '좌파'라고 부른다면, 주류 언론이 생각하는 우파, 혹은 보수의 모습은 앞뒤 가리지 않고 정부의 발표를 믿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정치학사에 한 획을 그을 신선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근거도 없는 음모론을 성급히 지지하거나, 사실에 바탕을 둔 주장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매체에 대해서도 언론으로서 기본적 소양을 갖추지 못 했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올바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비이성적인 주장이 판을 치거나 여론의 대립이 극심할 때도 밀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적 진실과 국익이라는, 애초에 비교도 될 수 없는 가치를 놓고 충돌한 황우석 사건,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형벌로 제재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이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다 광우병 걸리냐'라는 엉뚱한 시비로 변질된 PD수첩 사건 등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면 특정 매체가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판단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런 점에서 볼 때 창간 10년을 맞는 프레시안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좋은 매체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통해서 열정적인 진보주의자의 주장을 들을 수 있기도 했지만, 합리적인 보수 인사의 견해를 읽고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도 했다. 황우석 사건이 터졌을 때나 광우병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을 때는 무엇이 진짜 문제가 되는 쟁점인지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삼성 관련 보도에서 최근 신정아의 책을 둘러싼 논란에 이르기까지 다른 매체와 차별되는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초기부터 프레시안을 즐겨 찾았고 몇 차례 원고가 실리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10주년을 맞는 프레시안을 바라보는 일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창간 당시에는 천편일률적인 언론 보도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기사들을 보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기도 했고, 기고를 하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과 직접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명숙 총리 사건 관련 기고를 했을 때 후배가 보내온 반박 문자를 읽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앞으로 프레시안이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희망을 적는다. 우선 첫째는 새로운 이슈와 생각할 거리의 발굴을 부탁드리고 싶다. 신생 매체로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쟁점에 대하여 균형 있는 관점을 제시해온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답일까'보다 '무슨 문제를 고민할 것인가'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향후 10년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는 뒤처지는 사람 없이 모두 함께 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등 기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보다 깊고 넓게, 그리고 멀리 보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다는 매체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보다 깊고 폭 넓은 취재를 거친 탐사보도의 맛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독자들이 프레시안에 기대하는 것은 일간지와 경쟁하는 속보가 아니다. 하나의 사안이나 현상을 밑바닥까지 분석해보는 분석기사다. 그런 면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프레시안의 강점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굳이 무거운 주제에 한정될 필요도 없다. 물론 인력과 경비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잡지마저 마감일에 허덕이는 한국의 언론현실에서 프레시안이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싣는 매체가 되기를 바란다.
세 번째로는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문화 컨텐츠가 더욱 강력해지기를 바란다. 프레시안의 이름을 걸고 하는 문화 프로그램들 중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도 많지만 조금 더 보강이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프레시안을 즐길 수 잇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북섹션은 새로운 시도로서 토요일을 기다려지게 한다. 공연이나 전시, 영화에 대한 흥미있는 소개를 프레시안으로부터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날카로우면서도 품위 있는 매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프레시안에 다시 한 번 축하를 보낸다. 독자로서, 프레시앙으로서, 또 때로는 필자로서 프레시안과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프레시안의 지난 10년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글을 보내주십시오. 또 충고와 제안의 글도 좋습니다. 다가올 10년을 준비할 소중한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보내주실 곳은 webmaste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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