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안으로 찾아온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아파요?"
"예."
"그럼 진단서 떼어와요.".
다음 날 진단서를 떼어왔는데 보니
병명은,
1. 퇴행성 디스크병
2. 요추부 염좌.
의사소견은,
"상기 환자는 극심한 허리통증으로 내원한 분으로 일반사진 상에서 상기 병명으로 진단됨. 향후 3주 정도는 무리한 작업(예,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은 삼갈 것으로 사료되며 지속적인 약물치료 및 물리치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나는 사업장변경신청서에 이 진단서를 첨부하여 Y고용지원센터로 보냈다.
담당 공무원이 직권으로 이동시켜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공무원한테서 부정적인 전화가 왔다.
"사업주가 일이 힘들면 안 힘든 일로 바꿔주겠다고 하네요. 그러므로 직장 이동은 곤란합니다. 사업주 사인이 없이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날 줄이야!
이 기적은 세 사람이 연쇄적으로 참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다.
1. 참지 못한 노동자
회사로 복귀하는 차이퐁의 마음은 무거웠다.
발안과 Y고용지원센터를 쫓아다니느라 이틀이나 결근했기 때문이다.
회사로 들어가려 하자 사장님이 막아섰다.
"나가! 임마. 너 같은 놈 필요 없어."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진 걸 깨달았다.
회사로 들어가자니 사장이 막고, 나가자니 불법체류자가 되고.
진퇴양난에 빠진 그는 참지 못하고 태국에 있는 아내에게 일러바쳤다.
"여보, 나 X 돼버렸어. 회사도 못 들어가고 다른 데도 못 가고."
2. 참지 못한 아내
태국에 있는 아내가 참지 못하고 나와 통역에게 전화로 욕을 퍼부었다.
"왜 옮겨주지도 못할 거면서 옮겨준다고 해? 당신들이 책임져! 옮겨주지 않으면 내 가만 있지 않을 거야."
나와 통역은 극구 변명했다.
"직장 이동만큼은 우리가 아무 힘이 없어요. 우리가 고용센터도 아니고 태국대사관도 아닌데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러자 그녀는 방침을 바꿔 태국대사관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회사에 그대로 남게 해달라고.
태국에서 계속 걸려오는 '여성의 전화'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 *대사관에서 사장님에게 사정했다.
"회사에 남을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알았습니다. 참작해보죠."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3. 참지 못한 사장님
이제 사장님도 지겨워졌다.
고용지원센터, 태국대사관, 그리고 심지어 나한테서도 연신 전화가 오니까.
마음속에 회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전화통 불나네. 나도 이젠 못 참겠다. 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말썽도 많고, 말도 안 통해 꼭 벙어리 같은 XX! 내 이런 XX를 데리고 있느니, 아줌마라도 말이 통하는 한국인이 낫지 않을까? 마침 기숙사 방만 빼주면 일하겠다는 아줌마가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 께름한 건 저놈이 짐도 안 빼주고 방도 안 비워주면 어쩌지? 강제로 짐 뺐다가 말썽나면 그것도 문제고. 또 막상 사인해주었는데, 억하심정으로 남겠다고 떼기장을 부리면 그것도 골치잖아!
사장님은 나에게 전화했다.
"기숙사에서 짐 빼라고 하세요. 사인해 줄 테니까."
하지만 차이퐁은 불안해 했다.
"만약에 짐 뺐는데 사인 안 해주면 어쩌죠? 잘못하면 나만 불법 되는데."
"믿어도 돼."
일단 그를 안심시키고 강하게 밀어부쳤다.
"짐 빼!"
짐을 뺐다.
사장님이 사인했다.
성공!
* 대사관 : 이렇게 자국민을 자상히 보살피는 대사관이 있다는 게 놀랍다. 몇 년 지켜보았지만 태국대사관은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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