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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의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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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의 속뜻

[창비주간논평] 국민은 특정 권력이 선언하는 안보를 믿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명박 대통령은 제주 강정의 구럼비(거대한 용암 너럭바위로 국내 유일의 바위습지이자 희귀종 서식처이며 절대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바 있음)를 파괴하라고 독려하고 나섰을까? 세간의 풍문은 4·11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될 경우를 대비해 해군기지 공사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서라고 전한다. 과연 그럴까?

이명박 대통령은 2월 22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천명했다. 이날 대통령은 현 야당대표이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인사의 발언을 걸고넘어졌다. "대양해군을 육성하고 남방항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해군기지 건설은 불가피하다"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이 정권이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하려는 명분과 일치한다. 대통령은 분명 야당세력의 분열을 노린 것이다.

야당세력 분열과 정권심판론 물타기 의혹

노림수는 더 있다. 그것은 제주 해군기지 사안이 정치쟁점이 되면서 이명박정권 심판이라는 과제가 묻힐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표현된다. 지금 제주 해군기지 찬반 논쟁은 국민 전체적으로 상당히 팽팽하다. 게다가 이 와중에 국방부 장관은 물론이고 통일부 장관까지 나서서 북을 자극하며 찬성론을 거들고 있다. 결국 해군기지 건설 강행은 정권심판 여론을 가리려는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 강행이 이명박정권의 바람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커져간다. 제주도는 구럼비 발파사건을 접하면서 드디어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령의 권한으로 국방부에 공사 중지를 요청할 모양이다. 이러한 제주도의 행보는, 늦었지만 이명박정권의 일방적 행태에 대해 제주도민의 민심을 모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구럼비 공사를 둘러싸고 '원점 재검토' 입장이 힘을 얻으면서 이명박정부의 각종 무리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는 해군기지 찬반 논쟁을 통해 보수세력을 응집시키려는 이명박정권의 의도를 무너뜨린다. 해군기지 찬반이냐 공사 강행에 대한 찬반이냐의 차이는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의 차이이기도 하다.

▲ 13일 오후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해군 제주기지사업단 정문에서 공사부지를 둘러보도록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제주 해군기지는 1993년에 처음 제기되었고 2004년 9월 국방 중기계획에 반영되어 추진된 것이지만 그 당시에도 합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방해역에 대한 보호능력의 필요성이 지금 제주 강정에서 건설되는 해군기지 규모, 즉 4400톤급 구축함 20척 입항 규모와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해군기지의 입지가 진해냐 부산이냐 제주냐 하는 논란처럼 우리 군함의 이동시간의 단축이라는 전술적 의미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중국 같은 강국과의 관계를 그런 전술적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제주 해군기지 사태는 군사력 소요 수준에 대한 참여정부 당시의 불충분한 합의 외에, 강행 처리라는 새로운 문제가 본질을 뒤집고 나섬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는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강행 처리의 태도 속에 환경에 대한 가치를 회피하고 주민의 뜻을 외면하며 소중한 문화재조차 가볍게 훼손할 수 있다는 이명박권력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물론 참여정부가 결정한 해군기지 필요성을 둘러싸고도 찬성과 반대는 있었다. 여기에는 주민들 사이의 견해차도 있으며 이를 둘러싼 사회단체들 간의 대립도 있었다. 이 또한 갈등의 실체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2007년 6월에 이 사업 추진을 결정한 참여정부 인사들은 제주도민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사과는 바람직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국방과 안보에 대한 국민의 주권선언

다음으로는 기지 건설의 사유가 된 군사력 소요에 대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이는 '원점 재검토' 주장에 대해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라는 반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다. 여기서는 해군기지의 신규 건설 또는 기존 기지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을 가진 나라가 취할 태도다. 연관하여 세번째가 중요한데, 강화된 평화외교를 통해 군사력 위주의 정책 운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정해가자는 것이다. 그 수준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에 주권의 실체가 있다.

정부와 3년 넘게 싸워오며 지친 강정 주민들은 2011년 5월부터 투쟁지원을 호소해왔다. 그사이 국민은 국가안보를 이명박정부에 맡긴 이후 서해의 포성이 빈발하고 소중한 생명이 위협받는 일을 익히 겪어 왔고, 따라서 특정 권력에 의해 선언되는 국가안보의 내용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권력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는 국가안보가 아니라 주민 안전이 국가안보의 본질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주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일을 국가안보라는 분명치 않는 말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국민의 안보주권선언은 2010년과 2011년을 거치면서 형성된 새로운 사회적 가치였다. 바로 이 가치가 이명박정권의 이념과잉, 반생태, 문화재 경시, 주민 무시라는 낡은 사고방식과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구럼비 파괴를 밀어붙이는 이명박정권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고 국민의 밝은 지혜는 이런 점을 간파했다. 무리한 건설 강행이 쟁점으로 떠오름에 따라 주민여론조사 과정에서 어떤 잘못이 있었고, 절대보존지역 해제처분에서는 또 무슨 문제가 있었으며, 환경영향평가는 왜 공사 승인 전에 이루어지지도 못했는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제 제주 해군기지 사안도 이명박정권 실정에 대한 심판 범주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구럼비를 다치게 하지 마라. 총선 민심이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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