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산하 기관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간 삼성전자, 하이닉스, 페어차일드코리아 등 국내 반도체 공장을 대상으로 '반도체 제조 사업장 정밀 작업환경평가 연구'를 수행한 결과,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비소 등이 발견됐다고 6일 밝혔다.
세계보건기구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비소를 모두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 반올림에 따르면 1990~2000년대 초반까지 노후화된 반도체 공장 수동설비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렸다는 제보자는 140여 명에 달한다. 사진은 현대화된 반도체공장. ⓒ뉴시스 |
연구 결과, 벤젠은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 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가공라인 불검출~0.00038ppm, 조립라인 0.00010~0.00990ppm)했다. 포름알데히드 또한 가공라인(0.001~0.004ppm)과 조립라인(0.002~0.015ppm)에서 검출됐다. 전리방사선은 웨이퍼 가공라인과 반도체 조립라인에서 측정(0.011~0.015m㏜/yr)됐다.
특히 폐암 유발인자로 알려진 비소는 웨이퍼 가공라인의 이온주입공정(임플란트)에서 부산물로 발생하고 노출기준(0.01mg/㎥)을 초과(0.001~0.061mg/㎥)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비소는 이온 주입공정 유지보수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 노출 위험이 높았다.
박정선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은 "이번 연구로 공장 외부가 아니라 공장 내부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각 사업장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질 외에) 발암물질이 부산물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지금까지 간과했을 수도 있다"는 의의를 밝혔다.
반도체 작업 환경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은 부산물을 포함해 수백~수천 가지가 넘는다. 이번 연구는 그 중 특히 위험한 물질 수십 가지만을 상대로 측정한 결과여서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이종란 노무사는 "반도체 공장 설비가 현대화된 이후인 최근에도 반도체 조립라인과 웨이퍼 가공라인에서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된 의미가 크다"며 "특히 백혈병 등에 걸린 노동자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노후화된 수동라인에서 일한 만큼, 측정된 것보다 화학물질에 더 많이 노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측정된 노출량은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봤을 때 극미량이어서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노무사는 "노동부가 제기한 기준치는 관리 기준치일 뿐"이라며 "발암물질에는 역치가 없기 때문에 노출허용 기준 미만에서도 충분히 희귀병이 발병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2008년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백혈병 위험도를 알아보기 위한 집단 역학조사의 후속조치로 이뤄졌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반도체 공장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혈액암인 비호지킨림프종이 발병할 확률이 여성 전체보다 2.67배, 생산직 노동자보다 2.66배, 조립공장보다는 5.16배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 업체에서 발생한 백혈병 사례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작업환경관리 및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라며 "이번 결과처럼 미량이라 하더라도 발암성 물질이 부산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근로자 보건 관리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정선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원장은 "보고서가 완성되는 2월 말 이후에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고 이해관계자를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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