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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치료비 월 500만원, 산재 승인 늦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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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 치료비 월 500만원, 산재 승인 늦어지면…"

"산재 제도, 건강보험처럼 선지급 후평가로 바꿔야"

15년째 도로와 아파트에 인터넷 통신선을 설치하는 일을 해온 이정훈(가명·43) 씨. 이 씨는 지난해 11월 일반국도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어지러움을 느꼈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병원에서 뇌출혈 진단을 받은 그는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이 씨가 쓰러지기 두 달 전부터 회사는 급박한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해 하루에 11시간씩, 주말에도 거의 쉬는 날 없이 작업을 강행했다. 그는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뇌출혈이 발병했다고 판단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승인을 신청했다. 회사에서도 산재 신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두 달이 넘도록 산재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 이 씨는 인천산재중앙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간병료를 포함해 매달 300~500만 원씩 드는 치료비를 고스란히 부담했다. 급한 대로 은행에서 2000만 원을 대출한 그는 "회사에서도 업무 중에 쓰러진 터라 산재를 인정하는데, 공단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씨는 "치료를 마치고 재활에 성공해 일을 재개하는 것이 목표"라면서도 "산재가 승인되지 않으면 일을 다시 시작하기도 전에 가정 파탄이 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재활 치료를 받는 환자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모든 산재 환자를 산재보험 하나로"

한국에서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는 적은 편이다. 2006년 업무상 재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 284만여 명 가운데,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는 38%인 107만여 명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0년 신상도 서울대의과대학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응급실에 온 직업성 손상자는 21만 명이었으나 그해 전체 산재 환자는 약 8만 명 미만이었다.

보건의료노조와 환자단체연합회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19일 '산재보험 및 산재병원의 현실과 과제'를 주제로 인천산재병원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발제를 맡은 임준 가천의과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산재보험 제도가 산재환자를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며 "산재를 입증할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때 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걸어 허락받고 치료받는 환자는 없다"며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산재보험도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업무상 인과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직업 관련성만 있으면 산재를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특히 이미 역학적으로 직업 관련성이 입증된 질병은 환자가 직접 청구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산재보험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환자가 아니라 병원이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을 분리해서 청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병원이 환자의 질병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관련 직업 목록이 검색되도록 한다. 만약 환자가 해당 직업군에 종사하면 병원이 환자를 산재보험 청구 대상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부적절한 청구를 가려내는 대안으로 임 교수는 "병원이 청구한 건강보험 급여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를 반증하듯이, 산재보험 청구가 부적절하다면 산업재해심사평가원과 같은 기구가 나중에 반증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임 교수는 이처럼 산재보험에도 '선지급 후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면, 산재 환자 대다수가 조기에 치료해서 직장에 복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재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 이미 치료시기를 놓치고 뒤늦게 요양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노동자를 비인간적으로 몰아넣는 현재의 산재 시스템이 만든 결과"라고 덧붙였다.

산재 입증 책임 '노동자→공단' 전환 법안 계류 중

이와 비슷한 법안도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11월 이미경 민주당 의원 등은 산재가 생겼을 때 재해와 업무 사이의 입증책임을 지는 주체를 노동자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업무상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업무 수행과정에서 유해·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이에 노출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해당 질병을 산재로 추정하도록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의가 있는 사건에 대해 산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해야 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한나라당 의원까지 서명한 이 개정안을 사용자 보험료 부담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실정이다. 임 교수는 "더 많은 산재가 드러나야 노동부도 제대로 산재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며 "그래야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의 역할도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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