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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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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다

[한윤수의 '오랑캐꽃']<345>

과거에 돈 받아줄 때 나는 전화를 주로 사용했다.
그 덕에 사장님들과 싸움께나 했다.
말이 안 통하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직원들은 다르다.
전화보다는 *팩스를 주로 사용한다.
싸울 일이 거의 없다.
팩스는 말이 없으니까.

회사의 경리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싸울 이유가 없다.
팩스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어차피 그들도 신세대이고 회사가 돈을 안 줘서 닦달을 받는 거니까.

그러나 사장님들 중에는 무지하게 드문 경우이긴 해도 화를 내는 분이 간혹 있다.
대개 나이 많은 분들이다.

베트남 노동자 기안(가명)이 퇴직금 차액 54만원을 못 받았다.
B간사가 팩스를 보냈다.
사장님이 발끈했다.
"내 나이 60이 넘었는데, 거기가 무슨 대단한 기관이라고 공문(팩스)을 보냅니까?"
"전화만 삐쭉 하는 거보다 낫지 않나요?"
"거기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발안파출소 앞인데요."
"내 금방 갈 테니 기다려요."
ⓒ한윤수

때는 바야흐로 12월 31일 정오.
종무식을 하려고 전 직원이 막 외출하려고 하는 참이었다.
그러나 손님이 온다니 어쩌나?
결과적으로 우리 센터 전 직원이 나가지도 못하고 그 사장님을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사장님은 20분 후에 도착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나이 많은 걸 내세우지는 않았다. 센터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목사가 더 늙어 보였기 때문이리라.

직원들이 죄다 보고 있는 가운데
나이 많은 사장님과 젊은 여성 B간사가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결 같다.

사장님이 물었다.
"여기 뭐하는 뎁니까?"
"외국인 근로자 도와주는 민간단체입니다."
"운영은 어떻게 합니까?"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합니다."
"왜 공문을 보냅니까?"
"돈을 안 주시니까요."
"근로자 보고 직접 오라고 하세요. 따질 거 따져보고 주게."
"근로자가 회사까지 갈 수는 없습니다. 무서워하니까요."
"걔가 불량을 냈어요."
"그래도 퇴직금은 줘야 합니다."
"나도 손해를 보았는데?"
"퇴직금은 다른 금품과 상계(相計)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돈은 못 줘요."
"그럼 노동부에 가서 얘기하시겠어요?"
"그러죠."
"그럼 얘기 끝났네요. 노동부에 진정하겠습니다. 됐습니까?"
"됐습니다."

얘기는 간단히 끝났다.

하릴없이 돌아가는 사장님을 보며
저 사람도 나 같은 *구가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팩스 : 우리 센터 직원들이 만들어 사용하는 팩스 지급요청서. 근로자의 인적 사항과 체불내역 등을 팩스로 보내기 때문에 '팩스 메시지'라고도 부른다.

*구가다 : 구형(舊型)

*후일담 : 근로감독관이 출석을 요구하자, 회사에서 퇴직금을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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