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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팔자 물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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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팔자 물팔자

[한윤수의 '오랑캐꽃']<336>

매일 새벽 산에 가곤 했는데, 안 간 지 오래 되었다.
계속된 한파로 산이 너무 춥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온천에 가서 목욕하고 요가로 몸을 푼다.
온천욕은 화성 시민의 특권이다.
좋은 온천이 천지삐까리로 널려 있는데다, 할인 요금으로 즐길 수 있다.

온천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사우나실이다.
개운하게 땀도 빼고 이바구도 할 수 있으니까.
꼭 옛날 사랑방 같다.

이바구는 가지가지다.
자기 아버지가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만주 벌판에서 발안까지 걸어온 이야기, 아프리카 사람들은 영상 5도에서도 얼어 죽는다는 이야기, 머리 좋은 애(노동자)들은 이직이 잦기 때문에 폴리텍대학 1등부터 10등까지는 안 뽑는다는 사장의 경험담, 여탕 때밀이가 남탕 때밀이보다 수입이 낫다는 이야기, 어젯밤 수원의 룸살롱에 가서 두당 20만원씩 주고 양주 마신 이야기 등.

마이크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1편만 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냉탕에 잠깐 다녀와서 '2본 동시상영' 식으로 2편을 연속 상영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일반적인 이바구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남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게 방금 사우나실을 나간 사람에 대한 뒷 담화다.
"저렇게 마이크를 잡고 싶을까?"
"입만 벌렸다 하면 뻥이라니까."

말이 많으면 사정없이 뒷 담화를 때리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가마니때기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다.

내가 입도 벙긋 안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우나실의 단골들이 주로 근처 공장 사장님들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사장님들이 기피하는 인물 중 하나가 '노동자 편드는 목사' 아닌가! 그래서 본인은 끽소리도 안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이 알아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는 우(愚)를 범할 필요야 없지 않은가?

오늘도 남의 이바구만 듣고 있다가 조용히 사우나 문을 열고 나갔다. 하지만 냉탕에 몸을 담갔다가 다시 사우나 문을 여는 찰나, 나를 지목하는 듯한 뒷 담화가 들렸다.
"외국인근로자 돈 받아주는.... 해 결 사!"
귀에 익은 목소리가 <해결사>라는데 방점(傍點)을 찍고 있다.

못 들은 척 사우나 문을 밀고 들어가 앉았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 표정이 안 좋다. 마치 버러지 보듯 쳐다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루루 하고 모두 나가버렸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
나를 보면 외면하거나 나가버린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무리 추워도 산으로 가야겠다고.

내 팔자는
물팔자가 아니라
산팔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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