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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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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여인

[한윤수의 '오랑캐꽃']<320>

얼마 전만해도 아내를 꽉 잡고 사는 남편이 많았다.
지금 그랬다간 누구 손에 죽을지 모르지만.

베트남은 지금도 그렇다.
꽉 잡고 사는 남자 무지하게 많다.

란(가명)과 그 남편은 한국에 온 지 오래 된 부부다.
말이 부부지, 실은 남편이 꽉 잡아서 아내는 실체가 없다.
그림자 여인이라고나 할까?

어느 정도로 실체가 없느냐?
란에게 전화하면, 란은 아무 말도 않고 얼른 남편을 바꿔준다.
그녀에겐 입이 없다.
따라서 여기에 란의 말로 기록된 것은, 사실은 모두가 남편의 목구멍에서 나온 소리다.

란은 임금 일부를 못 받았다.
노동부에 진정했다.
출석날 S간사가 노동부로 막 출발하려는데, 란(사실은 란의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못 가요."
"왜?
"회사일 바빠서요."
"그럼 돈 못 받아. 괜찮아?"
"괜찮아요."
"그럼 안 도와줘도 돼?"
"예. 안 도와줘도 돼요."
"왜?"
"다른 데서 도와줄 거니까."

어떤 브로커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큰소리 땅땅 친 모양이다.
"걱정 마. 내가 받아줄 게."
지난번에도 *브로커한테 속아 35만원을 뜯기고도 이런 흰소리를 믿다니?

이렇게 왔다리 갔다리 할 땐 과감히 손을 떼야 한다.
하지만 S간사는 인정에 약한 사람이라
"에이, 그래도 도와줘야지!"
하고 노동자도 없이, 혼자 출석했다.

다행히도 근로감독관 앞에서 쉽게 체불금액을 확정했다.
사장님과 S간사의 진술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15일치 체불임금 66만 5천원!
사장님이 말했다.
"돈은 이달 말까지 드릴 게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돌아오는 길에 S간사가 란(사실은 남편)에게 전화했다.
"란, 나 혼자 노동부 가서 다 해결했어."
"그래요?"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도 아니다.
"돈 들어올 테니까 기다려."
하자 란(사실은 남편)이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그럼 빨리 줘요."

패고 싶다.
그림자 말고
실체!

*브로커한테 속아 :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준다는 한국 브로커의 말에 속아, 란의 남편은 35만 원을 뜯기고 나서 그 돈을 받아달라고 나를 처음 찾아왔었다. 하지만 잠적한 브로커를 어디 가서 찾나? 안타깝지만 경찰에 사건을 의뢰할 수도 없었다. 부부가 둘 다 불법체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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