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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한윤수의 '오랑캐꽃']<317>

내가 만난 태국 통역 중에서 생다오(가명)가 최고다.
통역 실력은 좀 떨어져도 사람이 성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실녀(誠實女)가 속을 썩일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지난 5월 처음으로 정식 통역을 뽑을 때 이야기다.
원래 태국 통역은 일요일에만 일했었다. 그러나 어느 교회의 인건비 지원으로 일주일 내내 일하는 정식 통역을 쓰게 되었으니 얼마나 내 가슴이 부풀었겠나? 나는 통역 구하는 일로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생다오를 찍어놓고 있었으니까. 생다오 자신도 좋아할 터였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편할 뿐더러 동족인 태국인을 돕는 보람 있는 일이니까!

예상은 빗나갔다.
같이 일하자고 하자 생다오가 고개를 저은 것이다.
"저 통역 안 해요."
"왜?"
"더 멋진 일 할 거예요."
"그게 뭔데?"
"한국 구경도 하고 돈도 버는 일."
"그런 일도 있어?"
"예. 관광 가이드요."

기가 막히다. 관광 가이드가 얼마나 힘들고 험한 일인데. 경치 구경하면서 돈도 버는 줄 아는구나!
나는 몇 마디 더 해보았다. 가이드는 겉으로만 화려해보이지 무지하게 힘든 일이라고. 돈푼께나 있는 사람들이 별별 심부름을 다 시킨다고. 또 밖에서 자고 들어오는 일이 많아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그러나 가이드를 하겠다는 그녀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생다오는 가이드가 되었다.
처음 몇 주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팔도강산을 두루 돌아볼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설악산 한 군데만 줄창 갔으니까.
수입이 많으리라던 기대도 깨졌다. 주말에만 일할 뿐이지, 주중에는 일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들어서자 그나마 있던 일거리도 떨어졌다.
그녀는 회사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일거리를 쫓아다녔다. 말하자면 아르바이트 땜빵 가이드가 된 것이다.

10월 말 A여행사에서 그녀를 불렀다. 하루 일당 5만원에 인삼 1박스 팔면 커미션 만 5천원을 주기로 하고. 대신 그녀가 먼저 필요경비를 쓰고 나중에 정산 받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나흘 동안 관광객들의 숙박비, 식대, 입장료를 전부 자기 돈으로 냈다. 208만원.
하지만 회사에서 넣어준 돈은 120만원이 전부였다.
사장님이 말했다.
"며칠 안에 다 넣어줄 게."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생다오는 그제서야 속은 걸 깨닫고 나를 찾아왔다.

못 받은 돈은, 자기 돈으로 지불한 경비 88만 1천원, 4일간 일당 20만원, 인삼 11박스에 대한 커미션 16만 5천원, 전부 합하니 124만 6천원이나 되었다. 가난한 생다오 살림에 그 정도면 큰돈인데!

나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업무상 횡령으로 고발할 참이었다.
"회사 주소가 어떻게 되죠?"
뭔가 급박한 분위기를 눈치 챈 사장님이 발 빠르게 나왔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쉽게 말했다.
"생다오 때문에 그럽니다."
"아, 생다오 돈은 12월 2일까지 물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쇼."
나는 경찰에 알리지 않고 며칠을 기다렸다.

12월 2일 생다오 통장으로 우선 14만 6천원이 들어왔다.
다음날 110만원이 마저 들어왔다.
그것으로 가이드 생활은 끝났다.

생다오는 다시 공장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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